생일을 맞아 고마운 보모 이모들을 위해 준비한 머그컵 앞에서.
집사야 안녕. 알다시피 지난 8월24일은 내가 태어난 지 1년 된 날이야. 사람들은 생일이라고, 돌이라고 한다지. 잔치도 한다던데, 나한텐 아무것도 안 해주더구나.
뭐 그걸 트집 잡자는 건 아냐. 고깔모자 쓰고 초에 불붙이고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노래 불러봐야 알아듣지도 못 해.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아. 차라리 캔을 하나 더 따주고 말지.
사람들 중에도 좀 기특한 자들은 생일에 부모님한테 전화하고 그런다며? 그래서 나도 이렇게 편지를 써보기로 했어.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딨는지 누군지도 모르고, 뭐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넌 나랑 보들이한테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잖아.
1년이 참 빨리도 간 것 같아. 청주 작은 방에 살다가 이 집에 온 지도 벌써 10개월이 지났네. 이전보다 넓은 데서 살아서 좋았는데, 좀 편하게 살려는데 두 달 만에 보들이가 오는 바람에 망치긴 했어. 밥그릇, 물그릇에 화장실도 같이 써야 하고, 그 전엔 항상 집사 네 다리 위엔 내가 올라갔는데 보들이가 차지하는 바람에 난 전기방석으로 만족해야 했어. 넌 그것도 모르고 내가 철들었네, 성격이 바뀌었네 하더라. 보이는 게 다가 아냐.
설사 좀 하고 털 좀 날린다고 안방이랑 작은방에 못 가게 한 것도 좀 실망이었어. 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냄새 맡고 하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하루 종일 집 안에서 갈 곳이라곤 방이랑 거실이 전분데 그걸 못하게 하더군.
무엇보다 집사 네가 싱크대에서 음식 만들 때나 마루에서 밥 먹을 때 내가 옆에서 냄새 좀 맡는다고 치근대면 계속 저리 가라 그러고, 그걸로 부족하면 막 물 뿌리고. 그건 같이 사는 사이에 좀 아닌 것 같아. 그러면서 가만히 지켜보는 보들이만 “착하다”며 좋아라 하는데, 그건 아니지. 보들이처럼 가만있는 애들은 특이한 경우야. 소리가 나고 냄새가 나면 가서 맡아보고 맛보고 싶은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란 말이야.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얘긴, 나는 못하겠어. 네가 노력해주길 바래.
나 심심할까봐 보들이 데리고 온 건,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그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너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고 보들이만 편애하는 거 같아 기분은 썩 좋지 않지만, 가끔 장난도 치고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근데 사실 이제 보들이랑 장난치기도 부담스러워. 애가 너무 커버려서 같이 레슬링하기도 버거워. 내가 그런다고 걔도 날 막 깔아뭉개는데 난 3㎏도 안 되지만 걔는 4㎏이 넘잖아. 슬슬 위험해.
생일 맞았다고 내가 특별히 바랄 건 없어. 지금처럼 화장실 잘 치워주고 물그릇 자주 갈고 밥도 더 자주 캔이랑 섞어서 줬음 좋겠어. 같은 그릇에 먹는 탓에 보들이가 다 먹는 것 같아. 뭐 그거까지 집사 네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야.
곧 겨울 올 거니까 날 추워지면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줬음 좋겠어. 나 오자마자 샀던 캣타워가 이제 낡았던데. 군데군데 패고 털도 끼고. 전에 보니 좀 깔끔한 걸로 검색하던데 살 거면 추워지기 전에 장만했음 좋겠어. 우리 살찔까봐 간식 잘 안 주는 거 아는데, 보들인 몰라도 난 좀 챙겨줬음 좋겠어.
강아지나 몇몇 까탈스러운 고양이들에 비하면 이 정도 바라는 건 별거 아니란 거 잘 알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도록 해. 하는 거 봐서 1년 뒤나 그 전에라도 또 편지 쓸게. 집에서 봐.
서대문 박집사 동거냥 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