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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낮엔 더웠지만 밤엔 ‘따뜻’했다

등록 2018-08-10 19:24수정 2018-08-10 19:49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3. 무더위 덕분에…
무더위 맞이 ‘냥빨’. 불편한 표정의 보들이.
무더위 맞이 ‘냥빨’. 불편한 표정의 보들이.

“오늘은 좀 시원하겠네.”

낮 최고기온이 38도를 대수롭지 않게 넘나들다 35도 아래로 떨어지던 날이었다. 2018년 여름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 인지는 모르겠고,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가장 더운 여름임은 분명하다. 생애 두번째 여름을, 라미와 보들이는, 제대로 만났다.

과거의 여름엔 집에 오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에어컨을 틀까, 아님 선풍기로 견뎌볼까’ 하는. 그랬는데, 올해 여름엔 그런 고민 따위 할 여유가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작동하기 시작한 에어컨은 다음날 아침 출근 직전까지 돌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생애 최고 금액을 찍을 게 분명한 다음달 전기요금이 걱정됐다. 두 냥이에게 미안하지만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놓을 순 없었다. 밤엔 틀고 낮엔 끄기로 결론을 내렸다. 고양이 카페 등엔 “24시간 틀고 있어요. 얼마나 나올까요?”하는 집사들의 걱정이 빗발쳤지만, ‘더우면 자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에어컨을 틀 순 없으니 미안해서라도 출근 전에 이것저것 챙겨줘야 했다. 물그릇에 얼음 한두개씩 떨어뜨렸다. 화장실 문을 열고, 세숫대야에 깨끗한 물을 절반쯤 채웠다. 오후가 되면 햇빛에 달궈진 벽과 마루를 포함해 집 안에 뜨겁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나마 시원한 화장실 바닥에서 물장난이라도 해서 발바닥 열기를 식히길 바랐다.

오후가 돼 방바닥마저 뜨거워지면 라미나 보들이는 규조토로 만든 발매트에서 잠을 청했다. 화장실 앞에 두던 발걸레에 고양이 털이 붙는 게 보기싫어 산 매트였는데 한여름 동안 대리석 쿨매트 역할을 대신 했다. 정말, 내년 여름엔, 대리석 매트를 장만해주리라.

무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두 냥이는 집사가 없는 한나절 내내 자고 또 잤다. 집사가 들어와 에어컨을 틀면 그제서야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한낮 기온이 40도에 가깝던 날엔 퇴근해서 보니 보들이가 숨을 헐떡이기도 했다.

역대 최악의 무더위는 에어컨이 달린 마루에서 침대가 놓인 안방까지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들었다. 에어컨+서큘레이터+선풍기 조합으로 며칠 버티다 그냥 마루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에어컨 바로 앞에서 잠이 드니 온도를 29~30도로만 맞춰도 초가을 날씨처럼 잠들고 일어날 수 있었다.

무더위 덕분에 집사와 라미와 보들이는 무려 1년 하고도 6개월 만에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잤다. 두 냥이는 돌아가면서 집사 배에 올랐다가 옆구리에 기대 누웠다가 부드러운 여름이불 위에서 식빵을 구웠다. 아침 일찍 집사가 누워있는 안방에 들어오려고 방묘문을 만지작거릴 필요도 없었다. 자다 깨서 보면 눈 앞에 라미가 있었고 잠결에도 집사 종아리를 넘어 물 먹으러 가는 보들이의 털이 느껴졌다. 이불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함께 잠들고 깨던, 라미와 보들이의 아깽이 시절이 생각났다.

집사와 라미와 보들이의 생애 최악의 여름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박현철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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