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4. 라미가 두 돌을 맞는 동안
8월24일은 라미의 두번째 생일, 그러니까 인간 속세의 나이로 3살이 되는 날이었다. 1년 전 생일을 맞아 보모 이모들에게 줄 ‘시그니처 머그컵’을 주문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 정말 빠르다.
2017년 8월24일부터 1년 동안, 라미는 그 전 1년 못지않게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을 것이)다. 탄생~첫돌까지의 1년이 세상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면, 첫돌~두 돌까지의 1년은 사람에 적응하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집사가 두 고양이들과의 삶에 천천히 익숙해지듯 라미(와 보들이)도 집사라는 인간과의 삶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지난 1년 동안 라미의 가장 달라진 모습 중 하나로 차분해진 ‘밥상머리 예절’을 꼽을 수 있다. 한때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냥’으로 불리면서 음식을 향한 관심이 왕성한 시절이 있었다. 집사가 반찬을 깔아놓고 밥을 먹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국에 말아 먹고 볶음밥 해 먹고 라면 끓여 먹는 등 밥상 위엔 라미의 발길로부터 지킬 수 있는 단 한 종류의 음식만이 존재했다.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집사가 먹는 음식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기 위해 라미가 밥상 위로 올라오는 일이 줄었다. 가끔은 보들이처럼 멀찍이서 ‘맛있냐?’는 표정으로 앉아 있기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마산 할머니(집사의 어머니)가 두어번 정도 라미네에 오셨는데, 가시면서 할머니가 하신 말은 이랬다. “라미가 억수로 차분해졌네. 다 컸는갑다.”
집사가 싱크대 앞에서 요리라도 할라치면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사이를 번잡스럽게 오가던 일도 많이 줄었다. 싱크대 옆 냉장고에 올라가 배를 깔고 누워선 집사를 구경하는 것도 예전엔 못 보던 장면이다. 그러고 보니 라미가 보채는 일도 줄어든 것 같다. 집사가 빨래를 널러 옥상에라도 가면 건물이 떠나가라 울던 목소리 크기도 줄었고, 밤이면 이유 없이 싱크대 위에 올라가 “아오옹~” 하고 우는 일도 줄었다. 철이 들었다면, 그게 자연의 이치일 테니 기분이 좋기도 한데 한편으론, 해도 안 된다는 걸 라미도 알아버린 건 아닌가 싶어 아쉽기도 하다.
보들이와의 사이도 조금 변화가 있다. 같이 지낸 지 2년이 되어가다보니 둘은 이제 눈으로 대화를 한다. ‘너는 이거 먹어. 내가 저거 먹을게’, ‘방금 무슨 소리 못들었어?’ 같은 말을 주고 받는 듯, 눈을 맞추고는 이해한 것처럼 행동한다. 아! 이제 레슬링을 하면 라미가 보들이에게 진다. 눈에 띄게 자란 보들이와 달리 라미는 몸집이 커지지 않아 파워에서부터 밀린다. 보들이가 날린 ‘뒷발팡팡’을 맞고 라미가 억울하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집사를 볼 때가 있는데 이 장면이 제법 웃기다.
생일이라고 고깔모자 씌워주고 파티를 열어줄까 했는데 역시나 모자 쓰는 게 싫단다. 싫은 걸 억지로 하면 가만 못 있는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파티는 단념하고 아껴뒀던, 평소 먹는 것보다 조금 비싼 캔통조림을 저녁으로 선물했다. 라미야, 생일 축하한다. 철들지 않아도 좋으니 오래오래 맛있는 캔 먹으며 같이 살자.
박현철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