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ㅅ여고 학부모들이 4일 저녁 학교 앞에서 시험문제 유출 논란과 관련해 이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강남구 ㅅ여고에서 불거진 시험문제 유출 논란이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교육당국의 행정 능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ㅅ여고 쪽은 지난달 끝난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재심의를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경찰로 넘어간 사건의 진상 규명 역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교육 현장의 신뢰가 붕괴된 마당에 뒷정리마저 지연되는 셈이어서, 학부모들의 불신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혜숙 ㅅ여고 교장은 4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쌍둥이 자매는 전교 1등이 아니다”라며 “학업성적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전교 1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시교육청의 감사 결과를 반박했다. 이 교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각 대학마다 내신 성적을 평가하는 데 반영하는 과목과 과목별 가중치 등이 달라 과거처럼 100점 만점 기준에 따라 1등부터 순위를 나열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ㅅ여고를 포함한 많은 고등학교가 ‘전교 1등’이라는 결과를 내지 않는다. 예전처럼 전 과목 성적을 합산해 전교 1등인 학생을 가려내는 게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학교의 ‘시험문제 유출 의혹’은 2학년에 재학 중인 쌍둥이 자매의 성적이 올 1학기 급상승하면서 불거졌다. 지난해 1학기 이후 내신 성적이 각각 ‘59등→5등→1등’, ‘121등→5등→1등’으로 급등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는데, 교장이 나서 ‘1등’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교장의 주장은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해명으로 보고 있다. 과목별로만 석차를 내는 게 맞지만, ㅅ여고에서 모든 과목 성적의 합계를 내서 그 점수가 가장 높은 학생에게 상을 줬으니, “전교 1등이 없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학교 쪽은 지난달 29일 발표된 교육청 감사결과에 ‘재심의’를 요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학교 쪽은 이날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인 이 학교 ㅎ교무부장이 혼자 시험문제와 정답을 검토·결재했고, 담당 교사가 자리를 비울 때는 50분 동안 시험지를 혼자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교육청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단독으로 시험지를 결재·검토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ㅎ씨의 두 자녀가 2017년 이후 6차례 정기고사에서 오류가 확인돼 정답이 정정된 문제의 ‘기존 정답’을 써낸 경우가 9차례 있었다는 교육청 감사 결과도 논란을 불식시키진 못하고 있다. 두 자녀가 같은 문제에 ‘기존 정답’을 함께 써낸 것은 1학년 2학기 ‘수학Ⅱ’ 과목에서 한 차례뿐이었고, 당시 시험을 치른 학생의 70% 정도가 이들과 똑같은 ‘오답’을 써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의혹을 온전히 해소하지 못한 교육청 감사와 이에 대한 ㅅ여고 쪽 반발이 겹치면서 논란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공교육 평가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게 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다. ㅅ여고 학부모들은 지난달 30일부터 매일 이 학교 앞에서 검정색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촛불집회에 나온 학부모들은 “학교와 교육당국이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외치고 있다.
학교 쪽은 ‘오해의 발단’이 됐다는 학업성적최우수상을 이번 학기부터 폐지한다고 밝혔지만, 역시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ㅅ여고에서 대학에 추천할 때 이 상을 기준으로 추천 순위를 결정해 왔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육당국의 진화 능력을 벗어난 이번 논란은 결과적으로 수사 결과를 받아든 뒤에야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교육청의 감사자료를 넘겨받아 정밀분석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주 학사 관련 내용 전반이 담긴 교육청 감사자료를 넘겨받아 이제 검토를 시작했다”며 “혼란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권대봉 고려대 교수(교육학)는 “이번 사건은 내신 성적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과거 수능이 더 공정하다고 믿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면서 “공교육 정상화의 흐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짚었다.
최민영 황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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