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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뒤통수’ 때린 국회…“공청회 진술인 75%가 낙태죄 폐지 반대론자”

등록 2020-12-03 17:57수정 2020-12-03 19:20

8명 중 6명이 임신중지 처벌 유지 쪽에 서
“시기나 구성이나 졸속적” 공론장 왜곡 우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10월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최근 정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과 관련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이를 규탄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10월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최근 정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과 관련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이를 규탄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바로가기 : <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에 대한 법안 소위를 열기 앞서 8일 공청회를 갖는다. 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진술인은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6명은 낙태죄를 존치하는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절반 이상이 ‘낙태죄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상황에서, 여론 지형을 거스르는 진술인 구성으로 진행되는 공청회가 오히려 임신중지 입법 공론화를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진술인 8명 가운데 4명(국민의힘 추천)은 주로 ‘태아의 생명권’을 앞세워 임신중지에 반대하는 ‘프로라이프’ 계열 단체가 연 토론회 등에서 활발히 발언해온 법률가·교수·의사 등이다. 이중 연취현 변호사, 이흥락 변호사,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 등은 지난 10월21일 ‘행동하는 프로라이프’가 연 세미나에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흥락 변호사는 “존귀한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임신중지 자체에 반대하는 취지로 발언했고, 연취현 변호사는 14주의 주수 제한을 두고 임신중지를 허용한 정부 입법안이 “안이하고 막연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1명인 음선필 홍익대 법대 교수도 프로라이프 계열 단체가 연 토론회에서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점인 임신 6주 이후에는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진술인 구성이 ‘예상대로’라면, 여당의 진술인 구성은 ‘예상보다도 나쁘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추천 진술인 4명 가운데 2명은 ‘낙태죄’ 존치 입장으로 분류된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지난 2018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소원 공개변론에서 법무부 쪽 참고인으로 출석했었다. 당시 정 교수는 ‘낙태죄 자체는 위헌이 아니지만,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는 임신 12주 이내의 제한적인 임신중지 허용이 필요하다’며 현재 정부입법안과 유사한 의견을 냈었다. 마찬가지로 여당 추천으로 진술인으로 선정된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14주 안의 임신중지를 허용한 정부입법안보다도 더 까다롭게 임신중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10월 산부인과의사 단체들이 연 토론회에서 “주수 제한을 10주 이내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청회 진술인 가운데서 낙태죄 폐지의 목소리를 내왔던 전문가는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김혜령 호크마대학 신학과 교수 정도다. 김 부연구위원은 <한겨레> 기고문에서 “낙태죄를 남겨두는 것은 임신을 중지하려는 여성에게 범죄자라는 이름표를 붙이겠다는 국가의 결단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 지난 2017년 ‘낙태죄 폐지를 바라는 생명윤리학·철학·신학 연구자 연대’의 성명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진술인의 구성이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여론지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2017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낙태죄 폐지 찬반을 물었을 때, 응답자 중 51.9%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고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6.2%에 그쳤다. 지난달 3일에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국민동의 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관련 상임위에 회부됐다. 대한변협과 여성변회는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야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국회에 전달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여성계 안팎에서는 낙태죄 관련 공청회가 오히려 임신중지 관련 입법을 둘러싼 공론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나온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3일 성명서를 내 “현재 구성된 공청회 진술인을 보면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를 요구하고 있는 여성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진술인은 2명에 불과하다. 이제 국회의 책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파적인 구성의 공청회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나영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법사위의 이번 공청회는 시기상으로나 진술인 구성으로 보아서나 모두 졸속적이고 편파적”이라며 “국회가 지금 해야할 일은 공청회가 아니라 이미 제출된 법안과 근거들을 책임하게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술인 구성에 관여한 여당 법사위원 쪽은 ‘공청회는 의견을 듣는 절차일 뿐이므로 지나치게 의미부여할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법사위 여당 쪽 간사인 백혜련 의원실 관계자는 “뭔가 오해를 하시는데, 공청회는 법안을 심의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여러 의견들을 공청회를 통해서 듣자는 게 공청회의 취지지, 공청위를 통해서 법안을 심사를 하자는 게 아니다. 소위를 하는 게 아니라 공청회를 하는 것이다. 법안소위와 공청회는 구분해서 봐달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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