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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고 재밌는 ‘죽음 앞 농담’ [ESC]

등록 2023-11-25 07:00수정 2023-11-25 12:09

김태권의 웃기고 싶다
공포와 익살

그림 김태권
그림 김태권

짧은 머리에 속바지만 입고 알몸으로 싸우러 나가는, 웃음기 없는 근엄한 전사들. 스파르타에 대한 우리 현대인의 상상이다.

역사는 정반대였던 것 같다. 남자도 머리를 길게 길러야 했다. 나라의 법이 그랬다. 잘생긴 남자는 머리가 길면 더 아름답고, 못생긴 남자는 머리가 길면 전쟁터에서 무서운 얼굴이 된다는 거다.(나도 한때 머리를 기르고 다녔는데, 무서워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싸우러 나갈 때는 머리에서 발까지, 투구며 갑옷이며 정강이받이로 꽁꽁 싸맸다. 그리스 도기 그림을 보면 갑옷은 입되 속바지는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말을 아낀 것은 사실이다. 말이 길지 않은 사람을 높게 쳤다. 하지만 농담은 많이 했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스파르타 사람들이 평소에도 짓궂은 농담을 즐겼다고 했다. 다만 누군가 듣기 불편하다고 하면, 그 농담을 바로 그만뒀다고 한다. 이런 전통은 되살리면 좋을 것 같다. “이 방 안에서 나온 말은 방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스파르타의 규칙이었다.

스파르타 사람이 남긴 유명한 농담이 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전한다. 페르시아 군대와 테르모필라이에서 싸울 때, 페르시아 사절이 겁을 줬다. “우리 화살이 어찌나 많은지 태양을 가릴 거다.” 죽음을 앞둔 스파르타 사람의 대답은 이랬다. “그늘 아래서 싸울 수 있겠군.”

일본 바쿠후 시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무장 이시다 미쓰나리는 처형당하기 직전에 목이 말랐다. 죽기 전에 물 한잔이 먹고 싶었다. 감시하던 이들이 물은 없으니 곶감을 먹으라며 권했다. 곧 죽임당할 이시다는 대답했다. “곶감은 건강에 좋지 않으니 먹지 않겠다.”

죽음을 앞둔 농담은 독하고 재밌다. 어째서일까? 웃음이 곧 공격성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이 맞다면 농담을 하면서 더 잘 싸울 수 있을 거다. 한편 웃음이 안전하다는 감정에서 나온다는 이론도 있다. 농담을 통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셈이다. 아무려나 어느 쪽이건, 한걸음 떨어져 자기 상황을 돌아보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치게 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 미국과 소련의 고위층은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이 상황에서 많은 농담이 나왔다.

“자기 나라 폭탄에 맞아 죽은 외교관, 여기 잠들다.” 미국 뉴욕에 와 있던 소련 외교관들이 주고받은 묘비명 농담이라고 한다. 소련과 전면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는 동생과 측근에게 이런 농담을 했다. “백악관 대피소는 우리가 모두 들어갈 만큼 넓지 않지.”

아무려나 우리 모두 살아있어 다행이다. 살아야 농담도 즐길 수 있는 법이니.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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