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인기를 끌자, 전국 곳곳에 ‘와인 성지’가 생기고 있다. 다양한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인기가 높은 춘천 세계주류마켓에서 한 소비자가 와인 쇼핑을 하고 있다. 사진 춘천/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맥주 한 캔의 자리를 와인 한 잔이 밀어내고 있다.
동네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가는 것처럼, 사람들은 슬리퍼에 모자를 눌러 쓰고 와인을 사러 간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와인족들 사이에서 ‘성지’로 유명한 서울 광진구 자양동 새마을구판장 와인 코너에는 집에서 막 나온 듯한 차림의 20~30대 손님 대여섯명이 장바구니를 들고 와인을 고르고 있었다. 휴일이긴 했지만 아침부터 술을 사러 오는 열정을 응원하듯, 마트 직원이 구매자들에게 비타민 음료를 한 병씩 쥐여줬다.
코로나19 이후 바뀐 풍경 가운데 하나라면 와인이 일상으로 ‘쑥’ 들어왔다는 거다. 실제로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1월~4월 와인과 맥주의 매출 비율이 42대 58로 집계됐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35대 65에 견줘 격차가 크게 좁혀진 것. 업계는 코로나19로 홈술과 혼술이 크게 늘어난 것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MZ세대(1980년~2000년대 출생)를 포함한 20~30대는 와인 시장의 새로운 큰 손으로 떠올랐다. 이마트에서는 20~30대의 맥주 매출은 전년 대비 8% 신장한 데 반해, 와인 매출은 53% 올랐다고 한다.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편의점들도 수십종의 와인을 판매하는 주류 특화매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마트24는 전체 점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600여 개의 매장이 주류 특화매장이다. GS25와 CU는 연말까지 주류 특화매장을 각각 2천개, 5천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해 와인은 한국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넘실대며 들어왔다. 관세청과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3억3천만달러, 원화로 3700억원에 달한다. 2020년에 견줘 27.3% 증가했다. 이에 대해 홍준의 한국 주류수입협회 홍보 고문은 “올해 1월~3월 수입량도 1억달러를 돌파했다고 하는데, 이대로라면 작년 기록을 또 엎는 것”이라며 “2000년대 중후반 국내 와인 열풍은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꺼졌는데, 요즘은 입을 모아 다른 분위기라고 한다”고 전한다. 홍 고문은 “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에서 술을 마시는 장소, 상황, 상대가 모두 바뀌었다. 술 마시는 장소가 호프집이 아니라 집으로 바뀌었는데, 맥주나 소주보다는 와인이 더 적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장벽이 낮아진 것도 한몫한다. 중저가 와인 사이에서도 선택지가 넓어진 것. 김설아 신세계L&B 고객지원파트 부장은 “첫 번째로, 양조 기술의 발전으로 좋은 와인들이 대량 생산되는 점을 꼽을 수 있고, 다음으로 한국 와인 소비가 늘면서 국내 수입사들도 구매 파워가 생겼다. 과거 소량 수입보다 수입량이 늘다 보니 가격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비비노 앱 등 와인 가격 검색 앱을 통해서 국외 와인 판매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수입사나 유통사가 폭리를 취할 수 없는 시장이 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국내 와인 관련 기록들은 매번 경신되고 있다. 최근 와인 장터를 연 이마트는 지난 13~19일 일주일 장터 기간 매출이 지난해 상반기 장터 매출보다 70%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와인 연간 매출 1200억원을 기록했는데, 그동안 이마트에서 연간 1천억원 이상 팔린 품목은 라면, 우유, 돼지고기, 맥주였다고 한다.
장바구니에 라면, 우유와 함께 와인 한 병 담아오는 것이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통 시장으로, 마트로, 편의점으로, 새로운 와인 성지로 대두하는 동네의 크고 작은 와인 숍이 총총히 떠오른, 일상 속의 와인 시대가 열렸다.
춘천/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