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린이가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뜻으로 자중자애했다. 축제는 취소되고, 모임은 연기됐다. 옷깃 여민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말없이 고개 숙였다. 21세기의 가장 잔인했던 10월이 그렇게 저물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사흘째인 31일 전국에선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생때같은 청춘들의 무참한 죽음 앞에서, 첫날의 충격과 비탄은 애도와 다짐으로 조금씩 자리바꿈하고 있었다.
“어제오늘 종일 울었습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나왔어요. 저 꽃같은 친구들, 억울한 죽음이 더는 반복돼선 안 됩니다.” 이날 오후 이태원 합동분향소를 찾은 송아무개(36)가 한 말이다. 참사 당일 그는 이태원에 있었다고 했다.
근처에서 군용물품 대여업을 한다는 윤현진(65)씨는 떠난 젊은이들을 향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얘들아, 여기 와서 맘껏 놀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가버렸구나. 거기 하늘나라에서라도 편하게 실컷 놀려므나.”
참사 현장을 찾는 시민들도 많았다. 추모 공간에 쌓인 국화꽃과 메모들은 전날 밤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나 있었다. 회사원 김경민(28)씨는 강남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돌아가신 분들 다 저희 또래고, 친구들이고, 아는 분들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분들, 좋은 곳에 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짧은 인터뷰 내내 울먹였다.
밤샘 근무 뒤 들렀다는 강아무개(28)씨는 “사람 살리는 일이 직업인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못 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누른다. 이렇게라도 (추모를) 해야 죄책감이 좀 덜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참사 당일 비번이라 현장 구조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용산구 소방공무원이다.
31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 시민단체가 설치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묵념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광주·대전·제주 등 전국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추모의 발길이 계속됐다.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김민지(73)씨는 “서울에 손자가 살고 있는데 이번 사고 당일날 이태원의 한 건물 안에 있었다고 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우리 손자는 무사했지만 또래 청년들이 숨진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분향소가 설치되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정민기 광주청소년촛불모임 활동가는 “5·18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시민들은 이번 사고 소식을 듣고 남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며 “이번 사고를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공동체 정신의 상징인 5·18민주광장에 분향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전 분향소를 가장 먼저 찾은 박임득(53)씨는 “오늘 아침에는 차마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안 나오더라. 중학교 2학년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일부 시민은 경찰과 행정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에도 쓴소리를 했다. 충남 홍성의 합동분향소를 찾은 문성호(60·충남 태안)씨는 “예고된 행사였고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면 정부가 안전대책을 시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성명을 내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의 안전 불감증이 후진적 대참사를 낳았고, 청춘들이 질식당했다. 정부는 사태의 책임을 제대로 가리고,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온라인 공간을 마련했다. 누리꾼들은 추모 게시판에서 ‘추모 리본 달기’를 누르거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추모에 참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축제나 행사를 취소·연기하며 추모 분위기에 동참했다. 경기 성남시는 31일 노인 2천여명이 참석하는 ‘모란민속5일장 축제’를 취소하고 무료 급식 봉사로 대체했다. 100만명 이상의 인파가 예상됐던 제17회 부산불꽃축제(5일), ‘2022 제주올레걷기축제’(3~5일), 전북 전주남부시장 야시장(4~5일), 강원 철원 ‘제22회 평화통일기원 디엠제트(DMZ) 걷기대회’(4일) 등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김용희 오연서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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