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전남 영광군 영광예술의전당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고 최병연씨의 유해봉환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일제 군속(군무원)으로 강제동원돼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숨진 고 최병연씨의 유해가 80년 만에 고향 영광으로 돌아왔다. 광주·전남 시민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 1100여명의 조속한 봉환과 함께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전농 영광군농민회, 영광군여성농민회는 4일 전남 영광군 영광문화예술의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는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를 즉각 돌려주고 사죄·배상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모임은 “전쟁 야욕에 불탄 일본은 과거 식민지 조선에서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각종 공사 현장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며 “한국에서 6000㎞ 떨어진 키리바시공화국 타라와에는 당시 조선인 1200여 명이 강제동원돼 섬을 요새화하는 작업에 투입됐고 일본과 미국과의 전투에서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1918년생인 최씨는 24살이던 1942년 11월 아내,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남태평양 타라와에 끌려가 꼭 1년 만인 1943년 11월25일 미군과의 전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이끌다 2021년 102살로 별세한 이금주 회장의 남편(고 김도민)도 이때 숨졌다”고 덧붙였다.
시민모임은 “최씨가 뒤늦게 유골로라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고 기적같은 일이지만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성의나 노력은 없었다”며 “이번 경우도 미 국방성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발굴작업에 참여한 한국계 박사의 제보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전농 영광군농민회 등 시민단체가 4일 전남 영광군 영광문화예술의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을 상대로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을 촉구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시민모임은 일제강점기 오키나와,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등에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강제동원 피해자는 군인·군속 2만2천명, 노무자 1만5천명 등 최소 8만여명으로 추정했다. 그동안 일본과 사할린 등에서 일부 봉환된 유골은 있었지만 태평양 지역에서 돌아온 조선인 유해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민모임은 “일본 정부는 2016년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 유골을 발굴하면 유전자 대조를 거쳐 유족에게 인도하고 있지만 일본인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전범국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을 발굴해 조속히 가족 품으로 돌려주고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타라와 전투는 미군이 태평양전쟁 중 벌인 최초의 대규모 상륙전으로, 미군 3만5천여명과 일본군 4800여명(군무원 2200명 포함)이 맞붙어 각각 1700여명, 4700여명이 숨졌다. 미 국방성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 누리집을 보면 일본쪽 사망자 중 한국인 희생자는 1100여명이다.
이날 행정안전부는 영광에서 최씨의 추도식과 귀향식이 열었다. 최씨의 유해는 가족 선산에 안장됐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