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가수 유희열이 일본의 세계적인 영화음악 거장이자 작곡가인 사카모토 류이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졌다. 이에 대해 사카모토가 <한겨레>에 직접 입을 열었다.
사카모토는 “표절 (여부) 선 긋기는 전문가도 일치된 견해를 내놓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음악 지식과 학습으로는 독창성을 만들 수 없으며, 독창성은 자기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유희열은 지난해 9월 ‘생활음악’ 프로젝트의 하나로 내놓은 피아노 연주곡 ‘아주 사적인 밤’이 사카모토가 1999년 12월 선보인 피아노 연주곡 ‘아쿠아’와 유사하다는 논란에 대해 지난달 “유사성을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이에 사카모토는 회사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유사성을 확인했지만, 표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카모토는 최근 <한겨레>와 한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표절 판단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작곡가들은) 음수가 제한된 음계에 근거해 멜로디와 화음을 만들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많은 곡은 비슷하다”며 기준을 밝히는 데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작품이 비슷하게 닮아가는 구체적인 예로 “어떤 작품은 불가항력으로 닮아버리거나, 어떤 작품은 분명히 비슷하게 만들었거나, 어떤 작품은 그대로 베껴버린 곡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그(표절 여부의) 선 긋기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전문가도 일치된 견해를 내놓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사카모토는 입장문을 통해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 가미한다면 훌륭하고 감사할 일이다”라며 “저도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며 많은 것을 배운 바흐나 드뷔시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여러곡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사카모토는 자신 또한 다른 작품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털어놨다. 그는 “제 경우 음악적 소양의 90%가 서양음악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현대 팝이나 록, 일본 전통음악의 영향도 몇%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옐로매직오케스트라(YMO)를 시작했을 때 서양음악의 전통 지식을 사용했는데, 그 뒤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배운 것을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옐로매직오케스트라는 1978년 데뷔한 일본의 3인조 밴드로, 사카모토가 키보드, 일본 록의 전설로 불리는 호소노 하루오미가 베이스, 다카하시 유키히로가 드럼을 맡았다. 팝과 로큰롤 기반의 전자음악에 현대음악 요소도 가미하는 등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해 일본 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의 곡 ‘비하인드 더 마스크’는 마이클 잭슨과 에릭 클랩턴이 리메이크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카모토는 “기존에 배운 것을 잊기 위해 접한 장르가 ‘레게’였다”고 했다. 그는 “레게는 서양음악엔 없는 단순한 음악이지만, 레게 소리의 숲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경치가 펼쳐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 복잡성은 결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저 장르를 바꾼다고 해서 독창성을 쉽게 얻는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
2018년 한국에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 전시회를 찾은 사카모토 류이치. 글린트 제공
사카모토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음악에는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지식과 학습으로 습득할 수는 있다. 즉 재능이 없어도 지식과 기술로 작곡은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지식은 과거의 집적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독창성이 없다”며 지식과 독창성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독창성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항상 ‘이러면 되는 것일까?’ ‘다른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며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물으면서 하나하나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에서 독창성을 유지하는 건 예술가마다 다르겠지만, 그는 그다지 괴롭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사카모토는 그 이유에 대해 “새로운 울림이나 멜로디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이 각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독창성을 만드는 과정이) 비록 힘들었지만, 창작의 기쁨으로 (힘든 것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1952년생인 사카모토는 도쿄예술대 작곡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를 시작으로 <마지막 황제>(1987), 한국 영화 <남한산성>(2017) 등 여러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마지막 황제>로는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과 그래미상을 받았다.
사카모토는 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현재 일본 문예지 <신초>에 암 투병 에세이 ‘나는 앞으로 몇번의 보름달을 보게 될까’를 연재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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