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들 토론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재벌의 경제력 남용과 상생경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재벌의 경제력 남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두고 큰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사회를 맡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도 “양쪽 간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보수 쪽 토론자들은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은 시장의 판단과 자율적 정화능력에 맡겨두자는 입장이었다. 따로 규제를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반면 진보 쪽 토론자들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시장 왜곡을 넘어 재벌·총수 일가의 이익만을 쫓는 결과를 초래하는 만큼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보수 쪽 토론자인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부정적 어감이 강한 ‘재벌’ 대신 ‘대기업’이라는 표현을 써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경쟁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것으로, 대기업의 경쟁력 있는 상행위 자체를 (일방적으로) 경제력 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대·중소기업 간 원하청 관계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이 오히려 대기업과의 거래를 원한다”고 말했다. 재벌(대기업)의 대형마트 진출을 제한하는 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행위이며, 원·하청 관계에서도 대기업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규제가 필요 없다는 논리다.
반면 진보 쪽 토론자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남용’보다 ‘집중’의 폐해를 강조했다. 경제력 남용은 대·중소기업 간에 국한되지만, 경제력 집중은 시장을 넘어 사회 전체에 ‘영향력의 쏠림’ 현상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 한 사례로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에서 특별검사를 맡았던 조준웅 변호사의 아들이 삼성전자에 입사한 사실을 들었다. 재벌이 경제력을 활용해 법조계는 물론 정치계, 학계, 언론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기술혁신과 시장의 활력에 장해가 되는 것은 물론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며 “재벌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져 개인 혹은 총수 일가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보다 앞서는 것을 막으려면 경제력 집중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력 남용에 따른 ‘사후 규제’가 아니라 경제력 집중을 막는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 비판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보수 쪽 토론자인 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은 구조적 원인보다 현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중소기업정책은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생명을 연장하는, 재벌정책은 중소·중견기업이 공급하던 내수시장을 재벌 3세들이 차지한 이후에야 나왔다”고 평가했다. 진보 쪽 토론자인 이봉의 서울대 법대 교수는 “재벌 정책이 출자규제 같은 지배구조에만 초점을 둬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는 양상을 방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안을 두고는 차이가 벌어졌다. 보수 쪽 토론자인 김정호 교수는 규제를 줄여야 한다는 견해였고, 임영재 선임연구위원은 한계 중소기업의 퇴출을 통해 재벌의 낙수효과를 키워 양극화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상인 교수는 “총수 일가의 이익이 사회적 이익과 일치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혁신형 경제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봉의 교수는 “재벌 정책이 소비자후생이나 효율성 등만을 따지는 대신 상생협력, 국민경제의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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