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격을 당한 가자지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남부 쪽에서 본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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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분쟁을 가자지구에 가두고, ‘잔디 깎기’ 전략으로 대처한다.”
이스라엘이 2005년 9월 가자지구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한 이후 취해온 팔레스타인 전략이 지난 7일 하마스의 전격적인 이스라엘 공격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스라엘 베긴-사다트 전략연구소의 에프라임 인바르 소장은 2014년 8월 발표한 ‘가자에서 잔디 깎기’라는 글에서 “이스라엘은 다루기 힘든 지속적인 분쟁을 안고 있고,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제거할 가능성이 없으며 정치적인 해결책도 달성 불가능하다”면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이스라엘은 ‘잔디 깎기’ 전략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전략이 “일정 기간 동안 군사적으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하마스의 공격을 가혹하게 처벌하고 군사적 역량을 저하시켜 일정 기간의 평정을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웃자란 잔디를 주기적으로 깎는 것처럼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뿌리를 뽑기보다 주기적으로 때려서 약화시키고 억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커다란 전략에 따라 이스라엘은 17년 동안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물자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주기적으로 공습과 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와 4차례 전쟁을 벌였고, 2008년과 2014년에는 지상군을 투입했다. 그로 인해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기 전까지 가자지구에서는 3500여명이 죽고 1만5천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의 ‘잔디 깎기’ 전략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서울시 면적의 60% 정도 되는 땅(360㎢)에 220만명의 주민을 가둬둔 채 17년 동안 잔디를 깎듯이 주기적으로 공격하는 가자 전쟁은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분쟁을 정치적·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이런 방식으로 가자 전쟁을 17년 동안 지속하면서 위험을 관리해온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런 이례적이고 비대칭적인 전쟁을 수행해온 배경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오슬로 합의(1993)로 대변되는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좌초,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수니파 아랍 세력 대 이란 주도의 시아파 연대 사이의 대결로 인한 중동 분쟁 판도 변화, 하마스(가자지구)와 파타흐(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나뉜 팔레스타인 내부 분열, 이스라엘의 우경화 등이 거론된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한때 이스라엘 정착촌까지 건설했다. 하지만 2005년 9월 아리엘 샤론(1928~2014, 집권기간 2001~2006) 당시 총리가 집권 우파 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군 병력을 철수하고 정착촌도 완전 철거했다. 배경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센 저항과 중동 분쟁 판도 변화가 있었다.
2000년 9월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샤론 전 총리는 이스라엘 우파들이 이스라엘에 주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동예루살렘의 성지 성전산을 방문해, 팔레스타인의 2차 민중봉기(인티파다)를 일으켰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은 완전히 좌초됐다. 2차 인티파다는 4년 반 동안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3천여명과 이스라엘인 1천여명이 죽었다. 특히 면적은 작은데 인구는 많고 저항은 거센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환부로 변했다.
그러는 사이 중동의 판도도 크게 변했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스라엘의 ‘주적’이었던 후세인 정권 붕괴는 중동에 거대한 세력 공백을 만들어냈다. 그 여파로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고개를 들고 이란의 역내 영향력이 커졌다. 중동 역내 갈등의 축은 사우디 중심의 친미 수니파 아랍 세력 대 이란 주도의 반미 시아파 연대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이란과의 대결을 우선시하며 팔레스타인 분쟁을 도외시했다. 그사이 이란-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가 하마스에 손을 내밀었다.
이런 배경 속에 단행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의 애초 목표는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돌려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샤론 전 총리가 물러난 뒤 이스라엘 정치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반대하는 우파 우위로 완전히 바뀌었다. 오슬로 합의를 이끌며 평화협상을 추진해온 이츠하크 라빈(1922~1995) 전 총리의 노동당은 군소정당으로 몰락해 갔다.
이어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이 가속화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이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2004년 11월11일 사망하면서 이스라엘의 평화협상 파트너였던 자치정부 내 파타흐 세력의 지도력도 약화됐다. 그 빈틈을 타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하마스 세력이 커졌다.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했으나 파타흐 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양쪽은 내전을 벌였다. 2007년 6월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파타흐 세력을 추방했다.
이후 팔레스타인은 파타흐가 행정권을 행사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로 분단됐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전략 역시 팔레스타인 분쟁을 가자지구 안에 가두려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 이스라엘이 잔디 깎기 전략을 구사할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집트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고, 사우디 등은 이란과 대결에 관심을 기울이며 팔레스타인 분쟁에 별로 관여하지 않게 됐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때리는 것은 이스라엘과 아랍 수니파 국가들의 공통 주적인 이란을 견제하는 의미를 갖게 됐다.
2006년 6월25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를 납치하자, 이스라엘은 2008년 ‘여름비 작전’이라는 지상군의 첫 침공작전을 벌였다. 본격적인 가자 전쟁 시작이었다. 2014년에도 지상군의 침공이 이뤄졌다. 이스라엘 청소년 3명이 하마스에 의해 살해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스라엘은 7월6일부터 50일 동안 6천번의 공습을 통해 폭탄 907t을 투하하고, 5만발이 넘는 대포를 발사했다. 탱크 158대를 동원해 지상군 3개 여단이 가자지구를 침공했다 그로 인해 가자지구에서 2205명이 숨졌다. 1만6천채 집이 파괴되고 가자지구 인구의 4분의 1인 43만명이 한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문제는 이러한 잔디 깎기 전략이 목표를 달성했냐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라는 잔디를 깎으려 나설 때마다 잔디는 항상 이전보다 더 자라 있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잔디를 깎는 데 드는 비용과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5월에도 11일간이나 F-16 전투기 등을 동원해 정밀 유도폭탄으로 하마스의 지하터널, 특공대 대원과 선박, 로켓 1만4천대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이 공격으로 어린이와 여성 100여명을 포함한 243명이 희생됐다.
더구나 이 폭격이 이뤄진 지 1년 반 뒤인 지난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예상을 깨는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하마스 주장에 따르면, 7일 새벽 6시30분께 20분 만에 로켓 5천발을 발사했다. 이 공격에 이스라엘의 방공망인 아이언돔은 무력화됐다. 하마스는 행글라이더와 보트를 이용해 분리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영내로 침입했다. 이 뜻밖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서 1400명 이상이 숨지고 200여명이 인질로 잡혔다.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이어지며 23일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서만 5천여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의 잔디 깎기 전략이 사실상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 잡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지난해 5월 ‘잔디 깎기: 팔레스타인과의 영속적 전쟁을 위한 이스라엘의 전략’이라는 글을 통해 잔디 깎기 전략은 애초부터 정치적 해결을 배제하고 전쟁을 영속화한다는 데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17년 동안 팔레스타인 분쟁을 가자지구에 가두고 주변 국가 등 국제사회는 이를 외면한 대가로 팔레스타인 분쟁은 악화되어왔다. 이 분쟁은 이제 중동 전체를 삼키려 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 ‘잔디 깎기 전략’이란 : 웃자란 잔디를 깎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뿌리를 뽑기보다 주기적으로 때려서 약화·억제하는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