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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항쟁 추모단체도 해산 눈앞…홍콩, 중국에 한걸음 더

등록 2021-09-16 04:59수정 2021-10-20 15:00

[오마이홍콩②]
지난 9일 홍콩 경찰이 지련회가 운영하는 6·4 기념관에서 전시물들을 압수하고 있다. 왼쪽 만화판은 촛불을 들고 6·4 항쟁을 지지하는 홍콩 민주화 운동가 스투화를 형상화했고, 오른쪽 만화판은 1989년 톈안먼 항쟁 당시 학생들과 대화에 나선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표현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9일 홍콩 경찰이 지련회가 운영하는 6·4 기념관에서 전시물들을 압수하고 있다. 왼쪽 만화판은 촛불을 들고 6·4 항쟁을 지지하는 홍콩 민주화 운동가 스투화를 형상화했고, 오른쪽 만화판은 1989년 톈안먼 항쟁 당시 학생들과 대화에 나선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표현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시민사회의 고뇌를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두 번째로 홍콩시민사회의 맏형 조직으로, 해산 위기에 놓인 지련회 이야기다.

홍콩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보여주는 ‘풍향계’가 정권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있다. 30년 넘게 중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고 이를 추진해 온 홍콩 비정부기구 ‘애국민주운동 지지 홍콩시민연합’(지련회)이 설립 이래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지련회는 지난달 말 홍콩 특별구 국가안전처 경찰로부터 ‘외세와 결탁한 외국 대리인’이라며 고발당했고, 민감한 내부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당했다. 지련회가 이를 거부하자, 경찰은 지난 8일 갑자기 ‘홍콩보안법’상 시민들을 선동하고 정부를 전복한 혐의를 적용해, 지련회 상임위원회 간부 여럿을 체포했다. 정권의 탄압으로 지련회는 이미 내부 회의를 열어 조직을 해산하기로 했고, 조만간 회원 총회를 열어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만약 안건이 통과되면 홍콩에서 중국 민주화 운동을 추진해 온 가장 강력한 조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89년 탄생 지련회, 홍콩의 자유 판단할 지표가 돼

지련회는 1989년 5월 홍콩에서 탄생했다. 1989년은 동유럽에서 공산 정권이 붕괴하고,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세계적인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해였다. 중국에서는 수도 베이징에서 톈안먼(천안문) 학생운동이 벌어졌다. 수많은 홍콩인들이 당시 베이징 상황에 흥분했고,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 농성하는 학생들을 응원했다. 그해 5월21일에는 무려 100만명의 홍콩인들이 태풍을 뚫고 지지 시위를 했고, 같은 날 홍콩 민주파 정치지도자들이 주도해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중국에서 민주·자유·인권·법치가 조속히 실현되도록 돕는 지련회를 결성했다.

1997년 7월 홍콩의 중국 이양을 앞두고, 지련회가 유지될지, 지련회의 핵심 인물들이 체포되지 않을지 국제적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를 지향하는 ‘일국양제’ 하에서 지련회는 계속 존재하게 됐고, 홍콩인들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 톈안먼 민주화 운동(6·4 사건)을 추모할 자유를 유지하게 됐다. 해마다 6월4일 저녁 지련회는 시민들에게 빅토리아 공원에 모이라고 호소했고, 시민들은 손에 촛불을 든 채 추모행사에 참여했다. 비록 홍콩이 중국 국경 안으로 들어갔지만, 홍콩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6·4 사건을 추모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았고, 지련회는 홍콩의 자유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됐다.

홍콩 지련회의 부주석 초우항텅(쩌우싱퉁)이 8일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지련회의 부주석 초우항텅(쩌우싱퉁)이 8일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보안법 발효로 결정적 위기 처한 지련회

지난해 6월30일 중국이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되면서 지련회는 홍콩 시민사회 조직 중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홍콩 보안법 전담 부서인 국가안전처 소속 경찰들은 지난달 말 지련회에 보낸 통지서에서, 지련회가 홍콩보안법 상의 ‘외국 대리인’으로 외국 정부나 외국 정치조직의 지시와 통제, 감독을 받고 금전적 지원을 받았으며, 이들을 위해 홍콩에서 활동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가안전처는 지련회에 창립 이후 현재까지의 임원과 구성원에 대한 자료, 수입, 지출 기록 등을 상세하게 제출하고, 외국 또는 대만 조직과의 연락 내역을 내라고 요구했다.

지련회는 외국 대리인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고, 국가안전처에 대표를 보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지련회가 공공연히 홍콩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엄중히 비판했고, 홍콩의 친중 언론들과 중국 관영 매체들은 한목소리로 지련회를 질책했다. 홍콩 경찰도 법률에 따라 엄중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홍콩 경찰은 지난 8일 오전 지련회가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고 회신하자 이튿날 새벽 지련회의 초우항텅(쩌우싱퉁) 부주석을 포함해 상임위원회 간부들을 여럿 체포했다. 체포 하루 만인 9일 밤 홍콩 법무부는 지련회 주석 리척얀(리쭤런)과 부주석 앨버트 호(허쥔런), 초우항텅을 홍콩보안법 제22~23조 국가정권 전복 및 선동죄를 위반했다며 기소했고, 체포된 다른 구성원들은 규정에 따라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10일 재판이 열렸고 판사가 최종적으로 보석을 허가하지 않아 이들은 구속됐다. 앞서 지련회의 리척얀 주석과 앨버트 호 부주석 등은 평화항쟁 시위에 참여하고 미승인 집회를 조직하고 참가했다는 등의 혐의로 지난해부터 감옥에 갇혀있었다.

홍콩 보안처는 9일 지련회가 시민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개설한 6·4 기념관도 수색했다. 이 민간전시관은 6·4 사건과 관련된 자료와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의 이야기, 책과 문서 등을 전시해 왔다. 경찰은 전시물, 6·4 촛불집회 사진 등을 포함해 서른아홉 상자 분량의 물품을 압수했다. 옛 지련회 회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출석해 경찰이 압수한 물건들은 위법한 것이 아니며 부당한 압수수색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9일 홍콩 지련회의 한 간부가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9일 홍콩 지련회의 한 간부가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선동·전복 혐의 체포된 부주석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

홍콩보안법에 따르면 선동·전복죄는 무거울 경우 5~10년, 가벼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초우항텅 부주석은 본인에게 적용된 혐의를 듣고 ‘진정한 변론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그의 변호사가 전했다. 그는 “먼지가 가라앉으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변론을 할 것이다. 우리에게 적용된 ‘외국 대리인’ 혐의를 다루는 것보다 (1989년의) 학살과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 문제를 다루는 게 훨씬 중요하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요구를 직접 들어보고 어느 쪽이 옳은지 살펴보자. 6·4 영령이 있는데어찌 물러서겠는가. 변론이 이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6살인 초우항텅은 지련회 부주석으로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중국 농민공 상고 사건 등 권익을 보호하는 사건들을 맡았다. 2010년 지련회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고 2016년 부주석에 올랐다. 이전에는 주로 무대 뒤에서 지원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했지만 오랜 동지였던 리척얀 주석 등이 줄줄이 체포되고 투옥되자 전면으로 나와 지련회의 대변인 및 수장을 맡았고, 정권의 타깃이 됐다. 중국공산당이 장악한 친중 매체들은 연일 그를 미행하고 몰래 사진을 찍어 그가 외국 인사로 보이는 이를 만나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초우항텅은 지난 6월 홍콩 정부에 빅토리아 공원에서 6·4 추모식을 열겠다고 신청했다가 거부당하자 개인 명의로 추모식에 참석하겠다고 했고, 결국 6월4일 오전 홍콩 경찰에 ‘무허가 집회를 선전하고 공표한 혐의’로 체포돼 두 달 동안 수감돼 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련회는 지난해 홍콩보안법이 발효되자 조직 내부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폐기해 개인 생활과 안전을 도모하고, 6·4 기념관에 있는 자료를 디지털화해 기념관 강제 폐쇄에 대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 시민사회의 환경이 매우 악화하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주진영 언론인 <핑궈(빈과)일보>가 지난 5월 운영을 중단했고, 다른 시민단체도 해산했다. 지련회는 지난 7월 상임위 간부 절반인 7명이 사퇴를 선언했고, 초우항텅과 리척얀 등은 유임됐다고 발표했다. 같은달 말 남은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전원 해산했다.

지난달 중순 정치적 위험이 계속 높아지면서 지련회 내부에서 여러 차례 해산 여부를 논의했고 상임위 다수가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25일 특별회원 총회에서 이를 최종 의결할 예정인데, 가결되면 홍콩에서 중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가장 권위 있는 조직이 사라지게 된다.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그러나 홍콩 정부는 지난 10일 홍콩 경무처장을 지낸 덩빙창 홍콩 보안국장이 지련회를 합법적인 등록조직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련회는 24일까지 서면 해명을 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홍콩 행정장관 및 행정회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이는 지련회가 스스로 해산하기 전에 중국 정부에 의해 해체되는 것으로, 홍콩이 더는 이견을 수용할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홍콩의 자유 상황이 중국 본토와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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