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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석유부국 베네수엘라 파탄이 ‘무상복지’ 탓이라고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8-08-27 11:58수정 2022-08-19 11:49

[더(the) 친절한 기자들]
한때 석유수출량 세계 5위권인 부자나라, ‘경제위기’ 원인 따져보니
석유산업만 의존한 ‘기형적 경제구조’… 유가하락-외화유출-초인플레이션 악순환
한때 석유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 경제가 사실상 마비됐습니다. 지난달에만 8만%에 이른 물가상승률로 휴지 조각이 된 화폐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정부가 초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존화폐에서 0을 5개나 떼어낸 화폐개혁을 실시했지만 시장 혼란만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극심한 경제 악화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엑소더스’(대탈출)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인근 남미국가로 탈출한 베네수엘라인이 230만명에 이릅니다.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 브라질 북부의 비스타시의 경우 시인구의 5~10% 규모인 3만여명의 베네수엘라 난민이 유입돼 매춘·폭력 사건 등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에콰도르, 페루, 콜롬비아 등 주변국들이 난민을 막기 위해 국경 빗장을 걸어 잠그는 등 ‘베네수엘라 위기’가 남미 전역의 위협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보수·경제 신문들은 ‘사회주의를 표방한 차베스 정권 무상복지 정책의 처참한 결말’이라고 말합니다. 석유 수출로 번 돈으로 복지를 남발하다가 국가 재정이 부실해져 경제가 망가졌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 주요 의원들까지 가세해 “문재인 정부가 표퓰리즘 복지정책을 계속하면 베네수엘라처럼 국가 경제가 파탄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남미 최고 부자나라였던 베네수엘라 경제가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요? 정말 베네수엘라의 무문별한 복지정책 때문에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했을까요? ‘반미 좌파’의 상징적 인물인 무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정치권 전면에 등장하고 사망하기까지 1990년부터 2013년 전후 경제 상황을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22일 한 여성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그림이 그려진 돌담 옆을 지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1999년~2013년 취임기간 동안 대대적인 사회빈민층에 투자하는 복지정책으로 많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카라카스/AFP 연합뉴스
지난 22일 한 여성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그림이 그려진 돌담 옆을 지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1999년~2013년 취임기간 동안 대대적인 사회빈민층에 투자하는 복지정책으로 많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카라카스/AFP 연합뉴스

■ 부패한 기득권이 불러낸 ‘차베스 복지정책’

베네수엘라는 가진 자원만으로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금수저 국가’입니다. 전 세계 최대 원유매장량을 바탕으로 5위권의 석유수출량을 자랑하는 남미 최고 부자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석유로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국민은 빈곤에 허덕였습니다. 베네수엘라 통계청(INE)의 발표를 보면, 1980년대 후반 베네수엘라에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힘든 빈곤가구의 비율은 50%, 이 가운데 절반이 빈민 수준의 극빈가구였습니다. 오일머니는 정치권과 결탁한 기득권층에 집중돼 양극화가 심해졌고, 돈을 빼돌려 외국에 숨기는 등 부정부패로 경제가 곪아갔습니다. 1970년대 2차례의 오일쇼크 이후 저유가 시대에 돌입했고 결국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습니다. 유가폭락은 석유 관련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인 베네수엘라 경제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이런 진퇴양난의 경제위기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우고 차베스(1954~2013·집권 1999~2013)입니다. 그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반대되는 사회경제 모델을 바탕으로 주택·교육·의료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중점을 둔 ‘볼리바르 혁명’을 주도합니다. 공공학교와 보육시설을 늘리는 교육프로그램 확대와 빈민층을 위한 무상의료시스템 도입, 토지개혁을 통해 도시빈민과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취임 초기인 1999년 국내총생산 대비 13% 수준이던 사회적 지출 비용이 2006년 40%까지 늘어났습니다. 차베스가 포퓰리즘 정권이라고 비판받는 것도 이 지점입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에 집중된 석유 산업의 이익을 사회빈민층에 투자해 베네수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2013년까지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 차베스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99년 이후 호조세를 보였다. 출처: TRADING ECONOMICS (* 누르면 확대됩니다.)

이 당시 경제 지표도 호조세를 지속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발표를 보면 차베스 집권기인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3.4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특히 차베스 정권 말기인 2011년 빈곤가구의 비율은 25%, 극빈가구 비율은 7%로 떨어졌습니다. 차베스 집권 전인 1978년부터 1998년까지 20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이상 감소해 서민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차베스 집권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대의 꾸준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 결과 차베스는 노동자·빈민 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장기 집권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회 기득권층에겐 ‘커다란 적’이었습니다.

■ 경제위기 제1원인은 ‘기형적 경제구조’

그런데 왜 잘나가던 베네수엘라 경제가 무너졌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2010년대 이후 지속된 국제 유가 하락과 미국과의 갈등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가격에 울고 웃는 나라입니다. 국가 경제 90% 이상이 석유 산업과 연관돼 있어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국가 경제가 휘청이는 구조입니다. 차베스가 사망한 2014년 전후 유가 하락으로 인해 수익이 줄면서 국고는 바닥났고, 외화 유출과 초인플레이션까지 겹치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석유산업에만 의존하는 기형적 경제구조가 위기의 시발점이었습니다.

2014년 이후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 증감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인 2014년 4월 이후 하락 국면이 이어졌다. 출처: TRADING ECONOMICS (* 누르면 확대됩니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는 왜 석유산업 이외에 다른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을까요? 차베스 정권도 농업·제조업 등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수출의존도가 높은 석유산업이 발전한 국가의 특성상 다른 산업이 발전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석유 수출로 경제가 잘나갈 땐 다른 국가에서 필요한 물건을 수입하는 게 유리합니다. 국내 생산가보다 수입 가격이 낮기 때문에 제조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정부가 전략 산업에 투자를 강화하고 국유화를 시행하는 등 적극적 산업화 정책을 펼쳤음에도 절대 우위인 석유산업 때문에 다른 산업이 발전하기 힘든 ‘기형적 경제구조’가 고착화된 것입니다.

미국과 갈등도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원인입니다. 남미의 대표적 반미국가인 차베스 정권은 말 그대로 미국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차베스 정권은 석유를 무기로 미국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석유 산업으로 부를 쌓은 베네수엘라 기득권층과 정치인들이 미국과 결탁해 있어 반미-친미 세력 간 대립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립은 차베스 정권 초기인 2002년 쿠데타와 총파업 이어져 정치·경제적 혼란을 키웠고, 현재까지 이런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1∼2014년께 이어진 국제 유가 상승을 등에 업고 미국이 ‘셰일가스’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것도 베네수엘라 경제에 직격탄을 가했습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그동안 채산성이 맞지 않아 국제 석유자본들이 손을 대지 않았던 셰일가스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석유 생산을 늘려 국제 유가를 떨어뜨리는 ‘치킨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 2014~2015년께부터 저유가 기조가 이어졌습니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차베스가 사망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시기와 겹칩니다. 이후 마두로 대통령 아래서 베네수엘라의 경제규모는 절반으로 쪼그라듭니다.

실제로 미국은 차베스 정권 말기인 2010년 전후 베네수엘라산 석유 수입을 지속해서 줄여왔습니다. 2013년을 전후해 기존 수입량의 80%를 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미국의 경제제재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 국유화 정책이 경제를 망쳤다?

베네수엘라 국영 기업인 베네수엘라 석유회사. PDVSA 누리집 갈무리
베네수엘라 국영 기업인 베네수엘라 석유회사. PDVSA 누리집 갈무리

비판론자들은 석유·철강 산업 등의 국유화가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주요 산업의 국유화 이후 방만 경영 분위기가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베네수엘라 국영 기업들이 방만한 경영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유화만으로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1980년대 이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은 정제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영국 등의 외국자본들이 지배했습니다. 석유 산업의 이익의 상당부분이 외국자본에 돌아갔습니다. 베네수엘라 석유 기득권층이 수익을 빼돌리는 부정부패도 잇따랐습니다. 그래서 국민 절반 이상이 빈곤에 허덕였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6년 베네수엘라 정부가 석유 및 철강 산업을 국유화하면서 국영석유회사 페데베사(PDVSA)가 설립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유가폭락 사태로 베네수엘라가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국유화된 기업들이 다시 민영화 수순을 밟습니다.

차베스 정부는 취임 직후 법 개정을 통해 석유와 철강 등 국가 전략산업들을 다시 국유화합니다.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기업 국유화 비율을 30%를 넘기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정책을 연동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실제로 석유산업이 국유화된 후인 197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회사수익과, 국내총생산이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국영화가 무조건 비효율적이란 비판은 베네수엘라의 당시 특수한 경제 상황엔 맞지 않았습니다.

■ 처참한 위기관리의 최후

물론, 베네수엘라에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가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보여주는 위기관리 능력은 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입니다. 베네수엘라는 2014년 이후 유가폭락이라는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2013년 3월 차베스 사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원유가격 폭락은 악순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국가 수익의 감소폭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며 국가 빚이 증가했습니다. 예산 확보를 위해 화폐를 찍어내는 과정에서 물가가 상승했고, 정부가 시장 가격을 통제하면서 시장 혼란이 커졌습니다. 복지 지출은 한번 시행하도 나면 다시 후퇴하기 힘든 ‘역진성’을 갖습니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 재정 상황에 맞춰 복지 지출 재정 등에 대한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유가가 상승할 거란 전망에만 기대 안이하게 국정을 운영했고, 베네수엘라 경제는 소생이 힘들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베네수엘라가 석유산업에만 의존해 지속가능한 성장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1990년대 전후 수차례 유가폭락의 위기를 교훈 삼아 국가의 새로운 성장 산업을 성장시키지 못했습니다. 중동국가들의 경우 안정적인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정유플랜트와 신재생에너지, 석유화학 산업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습니다.

그 사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도 지속해서 감소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에 매장된 석유 상당량이 불순물이 많은 초중질유(extra-heavy oil)입니다. 중동 국가들의 질 좋은 석유보다 정제 비용이 많이 들어 최소 유가가 70달러 이상이 돼야 경제성이 생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유가 기조가 이어졌고, 설비 노후화까지 겹쳐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은 계속 하락세를 겪습니다. 국영화 과정에서 유능한 인력들이 유출된 점도 국가 석유산업의 위기를 자초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노동자·빈민 모두가 행복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목적과 과정이 좋았더라도, 부실한 위기 대응으로 국가 경제를 망친 사태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지난달에만 물가상승률이 8만%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의 한 시장에서 2.4㎏ 닭고기를 사기 위해 14600000볼리바르를 지불해야 한다. 카라카스/로이터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에서 지난달에만 물가상승률이 8만%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의 한 시장에서 2.4㎏ 닭고기를 사기 위해 14600000볼리바르를 지불해야 한다. 카라카스/로이터 연합뉴스

■ ‘복지확대 = 경제파탄’ 단순논리의 함정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는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사례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을 하겠다면서 기업을 옥죄고 나라 곳간을 다 비우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추락을 알리는 재난 수준의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

“문재인 정부 정책은 ‘친서민’이 아닌 ‘반시장’이다. 최저임금 인상 강행 등으로 실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소득분배가 더욱 악화됐다. 반시장 정책의 베네수엘라는 어떻게 됐는지 보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베네수엘라 경제파탄은 포퓰리즘 정책으론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국민에게 공짜 바이러스를 심어주는 지도자가 역적이다. 베네수엘라는 기름이라도 나는데 우리는 국민 피땀을 짜내 표퓰리즘을 추진하는 실정이다. 변화가 없다면 멸망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문수 전 경기지사

야당 주요 정치인들 발언들을 한줄로 요약하면 ‘문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을 계속하면 베네수엘라처럼 경제가 파탄 난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쯤에서 마지막 질문을 던져야겠습니다. 만약 베네수엘라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면 경제위기가 없었을까요? 일원화된 산업 구조가 다양화되지 않는 한 국제 유가 하락에 의해 비슷한 경제위기를 겪었을 겁니다. 또 석유 산업에 기댄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로 양극화가 더 심해져 사회 전체의 혼란이 커졌을 겁니다.

포퓰리즘 복지정책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는 논리는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복지정책의 확대는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경제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은 신자유주적 사고 틀에 갇힌 편협한 해석입니다. 단지 복지정책 확대를 비판하기 위한 비판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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