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정은주 | 콘텐츠총괄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신청해보라고 많이들 얘기했어요.”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던 어머니(69)와 지병을 앓던 45살, 42살 두 딸이 세상을 떠난 뒤, 그들을 추모하는 장례식에 온 동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남편이자 아버지(2020년 사망)가 부도를 낸 2000년 초반부터 ‘수원 세 모녀’는 과거 살았던 화성시 기배동(옛 배양리) 오아무개씨 집에 주소를 두고 수원시에서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집안 생계를 책임지다 2020년 4월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큰아들(당시 46살)의 친구인 오씨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집으로 온 체납고지서 등을 건네곤 했답니다. “빚쟁이들이 쫓아올까 봐 그런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촌이 정부 (복지) 혜택을 받으라는 조건으로 집도 얻어줬는데 어머니가 (기초생활보장급여 신청을) 거부했다”고 들었답니다. 아들이 숨진 뒤 세 모녀의 경제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2021년 2월부터 18개월 동안 건강보험료(33만9830원)를 체납했습니다.
소득이 없는 세 모녀는 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신청하지 않았을까요? 생계급여 기준인 중위소득 30% 이하(1인 가구 58만3444원) 가운데 수급자는 123만명, 비수급자는 34만명입니다.(2018년 국민생활실태조사) 비수급자들에게 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선정되지 않을 것 같아서” “제도를 몰라서” “신청과정이 번거로워서” 등 제도적 사각지대(56.6%) 때문인 경우가 많았지만, “필요 없어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등 수급 비희망(32.7%)도 꽤 있었습니다.
비수급 빈곤층 상당수는 수급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부정적 시선 때문에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지난 25~26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및 신청자 4명은 자신들이 경험한 차별과 혐오를 이야기했습니다. 2019년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가 ‘공공부조의 신청 및 이용과정에서 나타나는 ‘빈곤의 형벌화’ 조치 연구’ 보고서에 언급된 수급자 7명도 비슷한 내용을 털어놨습니다.
“2017년인데 (주민센터에) 들어가자마자 (담당 공무원이) ‘안 되는데 왜 왔느냐. 신청하지 마라’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내 입장에서는 (주민센터에) 갈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 극한적인 상황에서. 눈물 나게 모욕적이죠.”
“누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고 주변 지인에게 말하겠어요?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무시하고 속으로 그러겠어요.”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동사무소에 다섯시 반 넘어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혼자 조용히 찾아가서 ‘(서류) 떼주세요’ 이렇게 얘기해요. 떼러 갔다가 (아이랑) 같은 학교 학부모가 있어서 돌아온 적도 있어요.”
낙인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8월29일치 <한겨레> 기획기사
‘기초수급 높은 문턱 뒤 ‘가난 증명시험’ 있었다’의 댓글을 살펴봤습니다. “부정수급은 어떻게 막나요?” “안 받아도 될 가정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너무 많음.” “엄격한 심사는 유지해야 함.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누가 들으면 남이 저렇게 만든 줄.” “부끄러운 줄 아세요.”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입니다.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가운데 1인 가구, 한부모 가구, 소년소녀가장 가구가 85.4%에 이르고, 장애인이 있는 가구도 41.4%나 됩니다. 이들의 평균 총소득은 100만6천원으로, 비수급 빈곤가구(기준중위소득 30% 이하 67만8천원)에 비해 많습니다. 기초생활보장급여가 공공부조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또한 공공부조에서 부정수급이 만연해 있다는 인식도 근거가 희박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부정수급통합콜센터를 만들고 출범 100일간 100억원의 부정수급을 잡았다고 홍보했지만, 이 가운데 97억8천만원은 사무장병원 등 기관 비리였습니다.
‘수원 세 모녀’ 죽음 뒤 정부는 빈곤층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데 힘쓰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급자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시각이 달라지지 않는 한 가난을 알리고 도움을 받는 것이 죽음보다 두려운 누군가는 여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발굴’되더라도 기초생활보장급여 신청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런 이들의 죽음 행렬을 멈출 수 있는 이는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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