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2023년 2월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추천된 것과 관련해 윤희근 경찰청장이 27일 “대통령실과 사전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사 참사’에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학교폭력 근절 대책만 지시했다고 한다. 심각한 인사 난맥상이 드러났는데도 임명권자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처음 보도됐던 2018년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같은 검찰청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3차장검사로,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은 평검사로 함께 근무했다. 당시 보도에서 언급된 ‘고위직 검사’가 정 변호사라는 것을 이들 모두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경찰 세평 조사에서도 걸러지지 못했다”는 등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변명만 내놓고 있다.
인사검증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인사정보를 수집·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을 두고 대통령 측근인 한 장관에게 과도한 권한을 몰아주는 게 아니냐는 등 비판이 일었지만, 정부는 그대로 강행한 바 있다. 그래 놓고 정작 문제가 터지자 법무부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특정인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비뚤어진 관료주의의 전형이다.
이렇다 보니 국민의 공분이 들끓는데 정작 누구의 잘못으로 어느 지점에서 인사가 실패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국정 운영의 핵심 중 하나인 인사 과정에 심각한 고장이 났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정 변호사의 흠결을 이미 알고도 임명을 강행했거나 문제가 된 뒤에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울 뿐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세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기득권 카르텔을 깨고 더 자유롭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함께 실천할 때 혁신은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특권층의 민낯을 드러낸 정 변호사 낙마 사태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공정’을 거론하니 말문이 막힌다. 윤 대통령은 당장 이번 인사 참사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문책부터 하고, 검사와 측근에 편중된 인사 시스템 혁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