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여야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했으나, 여권 반응이 부정적이다. 대통령실은 “입장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여당에선 이 제안을 폄훼하는 목소리만 잇따른다. 집권 여당과 야당이 맞서는 건 불가피하다. 그렇다 해도 벼랑 끝에 선 경제와 민생 앞에선 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 기회를 살려 민생정치 복원에 시동을 걸기 바란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 제의를 조롱하고 헐뜯기 바쁘다. 김기현 대표는 3일 “민생 문제를 국회에서 얘기를 안 하고 어디 엉뚱한 번지에 가서 이야기하느냐”고 했다. 당대표가 이렇게 나서니, “뜬금없는 떼쓰기”(강민국 수석대변인), “얄팍한 꼼수”(유상범 수석대변인), “잡범이 대통령급으로 폼 잡고 싶은 것”(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 등 저질 폄훼 발언이 경쟁적으로 쏟아진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 단식에도 온갖 조롱을 일삼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이 보기에 구속영장이 기각되자마자, 이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한 게 정략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여권 공격용 포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계산과 상관없이 야당 대표가 내미는 손을 선뜻 맞잡는 아량을 기대할 순 없는 건가.
그간 소모적 여야 대치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누가 뭐래도 임기 1년5개월이 다 되도록 제1야당 대표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한번도 만나지 않은 윤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은 왜 여야 대표 제안에는 침묵한 채 영수회담만 고집하느냐고 한다. 그런데 그간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안에 윤 대통령이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무위원들에게는 야당과 맞서 싸울 것을 주문했다. 대통령이 이처럼 극단적 대결을 부추기는데도 여당은 아무런 목소리도 못 낸 채 무기력하게 끌려가거나 오히려 편승하는 모습만 보여오지 않았나. 여권이 진정으로 민생을 염려하고 정치 복원을 바란다면, 더 이상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만남을 피하거나 훼방 놓아선 안 된다.
당장 4일부터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대법원장 인준 표결 등 여야 대치가 더욱 가팔라질 계기도 쌓여 있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경제와 민생을 두고는 대화와 타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수회담이 껄끄럽다면, 여야 정당 대표·원내대표가 같이 참석하는 다자 회동 등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윤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이 대표와 만나야 ‘정치’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