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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노인 폄하’ 논란에, 개혁 방향도 갸웃…커지는 혁신위 무용론

등록 2023-08-03 20:12수정 2023-08-04 02:14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김호일 회장을 만나 ‘노인 폄하’ 논란이 일었던 발언을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김호일 회장을 만나 ‘노인 폄하’ 논란이 일었던 발언을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 폄하’ 논란으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3일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사과하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당 안에선 거듭된 설화로 김 위원장과 혁신위가 이미 신뢰를 잃은 만큼, 당에 더 부담을 주지 말고 위원장직을 사퇴하거나 혁신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길 잃은 혁신위

혁신위는 전날 민주당 의원·보좌진·당직자 등에게 당 혁신방안과 관련한 설문지를 보내, 오는 8일까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문항은 모두 23개로 △민주당 관련 인식 △2024년 총선 전망 △당 혁신 관련 의견의 세 범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당 혁신 관련 의견을 묻는 문항이 16개로 가장 많다. 하지만 여기에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기 의혹’ 등 민주당이 혁신위를 구성하게 된 직접적인 사태의 원인을 복기·반성하거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관련된 질문은 없다. 비명계 인사들을 거칠게 공격하는 등 당내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부 강성당원을 제지할 방안도 없다.

그 대신 혁신 관련 문항의 초점은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관계 설정 △당대표나 최고위원, 국회의원 후보 등을 뽑는 당내 선거 때 대의원·권리당원과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중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등의 질문이 모두 11개다.

특히 11번 문항은 당 최고 대의기관을 ‘전국대의원대회’가 아닌 ‘전당대회’로 변경하는 방안에 찬반을 묻고 있다. 대의원이 참여하는 ‘전국대의원대회’를 통상 ‘전당대회’라 부르기 때문에 동어반복 질문이지만, 혁신위 관계자는 “전당대회에는 모든 당원이 참여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래된 당원 가운데 일부가 대의원으로 선출돼 참여하는 대의원대회는 민주당 당헌상 최고 대의기관인데, 혁신위는 여기에 모든 당원이 참여하는 방안을 물은 것이다.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1만6천여명에 불과한) 대의원들이 200만명의 권리당원들을 잘 대표하고 있느냐”며 “당이 그렇게 민주적이지 않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민주당에 가입했는데 막상 자신의 역할이 없다는 불만이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의원제 때문에 당이 이렇게 됐나”

민주당이 대의원제도를 유지하는 주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는, 호남이 주요 지지기반이고 호남 지역 당원도 많은 민주당이 당원 중심으로 운영되면 다른 지역의 민심을 당의 의사결정에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에 쏠릴 수 있는 당심을, 전국 각지의 대의원을 통해 ‘보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당비를 6개월 이상 납부한 권리당원을 포함해 당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당내 선거에서 대의원과 당원의 의견을 어떤 비중으로 반영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져왔다. 특히 친이재명계와 강성 당원들은 줄곧 대의원제 폐지와 당원권 강화에 목청을 높여왔다.

대의원제를 손질하자는 혁신위의 설문에 비명계 인사들은 “대의원제 폐지가 혁신위의 제1목표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초선 의원은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제대로 못 한 게 문제지, 우리 당이 이렇게 된 이유가 대의원제 때문이냐”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대의원제 폐지에 무슨 관심이 있냐”며 혁신위의 정무적·정치적 판단이 미숙하다고 꼬집었다. 지금도 일부 당 안팎 인사들이 강성 당원에게 휘둘리는 마당에 ‘당원 직접민주주의’의 판이 깔리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강성 당원들로 인해 당의 결정이 여론과 크게 괴리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설화로 신뢰 상실 자초

더 큰 문제는 혁신위는 혁신을 추진할 동력을 크게 잃었고, 그럼에도 민주당은 혁신위의 혁신안을 거부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잇단 설화로 김 위원장과 혁신위는 스스로 당 안팎의 지지를 흔들어왔다. 계파색이 옅은 한 의원은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해도 쉽지 않은 게 당 혁신인데, 지금 혁신위는 적대적인 여론에 갇혀버린 형국”이라며 “지금 이 상황에서 당헌·당규 개정을 ‘쇄신’이라고 들고나오면 강성 당원 말고 반응할 국민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핵심 당직자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민 눈높이를 반영하는 혁신위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강도 높은 혁신안을 제안하고, 당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국민과 언론으로부터는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혁신의 가장 큰 동력이 소실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선 혁신위가 내놓을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혁신안 1호인 ‘불체포특권 포기’가 시의적절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혁신안이냐는 지적과 무관하게 민주당이 즉각 이를 수용하지 않아 비판을 산 것처럼, 이번에도 혁신위의 제안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반혁신 세력’으로 몰리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 탓에 혁신위 조기 해산을 ‘출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9월 초·중순까지로 예상됐던 혁신위 활동 기간을 9월 정기국회 전인 8월 말로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혁신위가 힘이 빠져서 굉장히 어려워졌다”며 “(활동 기간을) 8월 말로 해서 빨리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사퇴 요구와 함께 ‘‘혁신위 해체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비명계 한 재선 의원은 “(설문조사로) 애당초 혁신 의지가 없는 조직이었음이 확인됐다. 논란만 일으키니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혁신위는 해체하는 게 (좋다). (김 위원장은) 개딸들(강성지지층의 멸칭) 홍위병 노릇을 할 게 아닌 바에야 지금 깨끗이 죄송합니다 그러고 혁신위원장을 내려놓는 게 민주당을 돕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퇴 요구를 받은 김 위원장은 “그건(사과와 사퇴는) 다른 문제”라고 일축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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