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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테마주 취재하자 ‘살인자’로 몰리다

등록 2016-10-19 05:01수정 2016-10-19 11:38

정치BAR_윤형중 기자의 윤중로 산책_테마주 취재 실패기
주식시황판을 보고 있는 투자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주식시황판을 보고 있는 투자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형중 기자님! 당신은 살인자입니다.”

“수많은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삶을 포기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책임지실래요. 쓸데없는 정의감이 넘치시는군요.”

“왜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반기로씨를 취재한 겁니까?”

지난달 28일 대선 테마주의 허상을 짚은 보도를 한 뒤 끔찍한 비난 메일이 쇄도했다. 반기로씨가 대표로 있는 파인아시아자산운용이 투자한 회사들의 주식을 산 개인투자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반기로 대표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친척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 기사를 쓴 것인데, 이 단순한 사실이 기사화되자 파인아시아자산운용이 투자한 파인디앤씨, SC엔지니어링, 부산주공 등 세 기업의 주가가 이틀 만에 반토막이 났다. 투자자로선 투자금의 절반을 날린 셈이다. 많은 언론이 반기로 대표가 반 총장의 사촌 동생이라고 보도해 이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한 뒤라 시장의 충격은 더 컸다.

허상 짚은 보도에 개미들 ‘비난·하소연’ 메일 쇄도

투자자들은 절망과 협박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맥빠진 목소리로 전화해 “진짜 반기로 대표로부터 직접 확인한 것이 맞냐”는 문의도 있었다. “반기로 대표와 주고받았다던 문자를 공개할 수 있느냐”는 요구에, 이튿날엔 휴대전화 문자를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 기사에 덧붙이기까지 했다.

반기로 대표를 취재한 이유는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주식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선 테마주 열풍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력 대선후보와의 개인적 인연을 빌미로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은 정치와 경제, 양쪽에 악영향을 미친다. 일단 권력과 가까울수록 특혜를 받는다는 인식은 불법이거나 불의한 기대에 기반한다. 공정하고 건전하게 국가경제를 이끌어갈 의지가 있는 대선후보라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지 않는다는 신호부터 명확하게 줄 필요가 있다. 게다가 “유력 후보와 친하다”며 급등한 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어느 시점에 “사실 안 친하다더라” 혹은 “너무 올랐다”는 소문이 퍼지며 다시 급락한다. 실적이 지지부진하고 사업상 특별한 호재나 악재가 없는 기업들의 주가가 한두달 만에 2~4배 이상 오르다가 또 그만큼 떨어진다. 자본시장의 꽃이라는 한 나라의 주식시장이 카지노보다 더한 도박장으로 전락하는 현상이다. 이런 테마주 열풍은 선거의 공정성도 훼손한다. 테마주에 투자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뽑을까. 경제적 이해득실과 관계없이 투표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반기문 테마주는 파인아시아자산운용에 그치지 않았다. 반 총장의 친인척 혹은 대학 동문이거나, 심지어 특정 행사에 함께 참여한 인연이 있는 인사가 기업의 임원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분류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뜯어보니 이런 인연들조차 확실치가 않아 보였다. 의심을 품고 취재를 시작했으나, 반기로 대표 이외엔 성공하지 못했다. 기업들의 취재 거부와 감독 당국의 방치 때문이었다.

반기문과 관계 묻는 질문에 아예 입 닫는 기업들

가령 서스데이아일랜드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의류업체 지엔코의 장지혁 대표는 반 총장의 외조카라고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이 업체는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이 반 총장을 미국에서 만난 9월16일을 전후해 주가가 2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이 기업의 실적은 3년간 누적 순손실이 100억원이 넘을 정도로 좋지 않다. 올해 8월5일 에이즈 백신 임상실험을 진행 중인 제약업체 스마젠의 지분 35.2%를 32억원에 취득한 것이 근래에 유일한 경영상의 변화였으나, 당시엔 주가 변동 폭이 작았다. 요모조모 뜯어봐도 장 대표와 반 총장의 관계 이외엔 주가 급등의 사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장지혁 대표 쪽은 ‘반 총장의 친인척이 맞냐’는 <한겨레>의 확인 요청을 거부했다. 지엔코의 공시담당자는 “어떠한 입장도 밝힐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왜 아무 입장도 밝힐 수 없나’, ‘대표에게 반 총장과 실제 친척인지 물어봐줄 수 있나’고 물어도 답변은 같았다. 다만 그 답변 내용이 대표를 포함한 회사 차원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주식시장을 감독하는 한국거래소가 제도적으로 기업에 특정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조회공시’다. 그런데 이 제도가 완벽하지 않다. 한국거래소가 정한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에는 ‘실적, 주식 발행량의 변동, 분할 및 합병, 출자, 감사 결과, 소송 등’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이에 해당되는 ‘주요 경영사항’만을 공시 대상으로 삼고 있다. 테마주 열풍으로 주가가 출렁인 많은 기업들이 조회공시에 대해 “당사에서 답변 공시할 중요한 정보가 없다”는 뻔한 공시를 반복하는 이유다.

거래소 ‘사이버 공시’ 단 4건…정치-경제 ‘투명한 상생’ 언제쯤?

한국거래소는 올해 6월 온라인상에 도는 소문을 알려 기업들이 답변하도록 유도하는 사이버알람(alert) 서비스를 시작했다. 거래소는 “주요 경영사항 위주로 운영되는 현 공시제도를 보완해 풍문·뉴스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투자자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 소속의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거래소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이 제도가 도입된 6월13일부터 10월4일까지 151건의 내용 확인 통보가 기업들에 전해졌으나 답변한 사례는 단 7건이다. 7건 중에 3건은 ‘반기문 친인척 부인’으로 ‘언론사 취재에 의한 간접 답변’으로 분류됐는데, 이는 <한겨레>의 지난달 28일 보도를 가리킨 것이다. 결국 사이버알람 서비스로 기업이 답변 공시를 한 사례는 4건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대선 테마주 취재는 감독당국의 방치와 기업들의 불성실한(혹은 불순한) 태도로 인해 계속 실패중이다. “반 총장과 친인척이 맞냐”고 일일이 취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올 수 있을까. 서여의도인 국회의사당부터 동여의도인 금융권까지 뻗은 윤중로를 걸으면서 생각해본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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