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 인증을 받은 뉴스케일파워의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자로(SMR) 원전 조감도. 뉴스케일파워 제공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한 유럽연합(EU)의 ‘그린 택소노미’ 초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의 최대 수혜자는 소형모듈원전(SMR)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언론에 ‘원전의 귀환’이나 ‘원전의 부활’로 소개된 국외 움직임은 대부분 SMR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겠다는 발표였다. 탈원전을 내건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미 지난해 초 문재인 대통령에게 수출용 SMR 기술개발 추진 계획을 보고한 바 있다. 지금은 이 계획을 구체화한 5832억원 규모의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중이다.
원전 관련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특히 SMR에 대해 “기존 원전보다 안전하고 경제성도 높을 뿐 아니라 출력 조절도 쉽다”며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를 보완할 최적의 발전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아직은 검증될 수 없는 주장이거나 지향하는 목표일 뿐이다. SMR이 아직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론도 적지 않다. SMR을 둘러싼 주요 쟁점과 궁금증을 짚어본다.
거대한 돔형 격납 건물로 상징되는 대형 원전에 위압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소형모듈형원자로의 ‘소형’이라는 표현에서 다소 경계심을 풀 법하다. 하지만 상상하는 것만큼 아담하지는 않다. 소형모듈원자로 원전에서 ‘소형’은 발전출력 기준으로 300㎿ 이하를 말한다. 300㎿는 최근 지어진 신한울 1·2호기(1400㎿)의 4분의1에 조금 못미치지만,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587㎿)와 비교하면 절반이 넘는 규모다.
설비의 크기에 대한 기준은 따로 없다. 뉴스케일파워의 출력 77㎿짜리 SMR 원전에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포함한 원통형 설비는 높이 약 23.2m, 직경 약 4.6m, 무게 약 700톤으로 설계됐다. 23.2m는 아파트 9층 높이다.
전세계 SMR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원자력계가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2020년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 인증까지 받은 뉴스케일파워의 경수로형 SMR이다. 뉴스케일파워는 이 SMR을 2029년까지 미국 아이다호주에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계획이 일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뉴스케일파워가 NRC의 표준설계 인증을 받은 SMR은 전기출력 50㎿짜리인 반면 아이다호주에 지으려는 것은 77㎿짜리이기 때문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뉴스케일파워가 50㎿로는 경제성이 안 나오기 때문에 77㎿로 키워서 변경한 설계로 인증을 다시 받으려는 것”이라며 “올해말까지 인증신청서를 다시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그대로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20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집계한 전세계 SMR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모두 72개다. 이 통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1997년부터 개발해온 ‘스마트’와 울산과학기술원이 2019년부터 연구에 착수한 ‘마이크로우라노스’도 포함돼 있다. 많아 보이지만 대부분이 개념 연구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수준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이들 가운데 실제 상용화돼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것은 4~5개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
SMR이 기존 대형 원전보다 안전하다는 원자력학계의 주장은 우선 크기가 작다는 점에 근거한다. 크기가 작다는 것은 핵분열로 발생하는 열 밀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고로 냉각기능 작동이 중단돼도 열을 식히기 쉬워 노심 손상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SMR이 자연적으로 냉각되는 피동형 냉각시스템을 갖춰 일본 후쿠시마 사고 때처럼 전력 공급이 끊겨도 안전할 것이란 주장이다. 단순화된 모듈 구조도 대형원전 대비 안전성을 설명하는 근거다. 따로 떨어진 주요 기기를 연결하는 배관을 없애거나 길이를 크게 줄여 배관 손상에 의한 사고 위험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R 연구개발 책임자인 임채영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은 “요즘 설계하는 SMR은 노심손상확률 목표가 10억분의1 정도까지 가 있어, 최신 대형 원전에 비해서도 위험 확률이 100배 정도 낮다. 원자력공학자 사이에 1억분의1 정도면 실질적으로 사고확률을 배제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냐를 놓고 기술적 논쟁이 있어 대부분의 SMR이 아예 목표치를 10억분의1로 놓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는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크기가 작고 단순해져서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대형 원전 설비의 절반 이상은 안전과 관련된 설비로 볼 수 있는데, 원전이 작아지면서 이런 설비들이 압축되면 검사와 관리에 들어가는 기술 비용이 더 증가하고 안전성은 더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MR로 대형 원전과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려면 다수 호기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각각의 SMR의 안전성은 높아지더라도 전체적 안전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고준위 방사성 물질인 사용후핵폐기물 발생량은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할 때 SMR이 더 많을 수 있다. 소형 원자로의 열 밀도가 대형 원자로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임 소장은 “냉각수로 물을 쓰는 SMR은 연료 사용량이 약간 많거나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며 “설계를 아주 잘 하면 (대형 원전과) 비슷한 수준까지 가고, 아니면 조금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연구개발비 지원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인 i-SMR은 물을 쓰는 경수로형이다.
다양한 발전시설의 경제성은 설치 운영되는 여건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원전의 경제성은 사고위험과 사후처리 비용 등을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미래 세대에까지 전가되는 원자력 발전의 사회적 비용은 정확한 산정도 불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이런 비용을 감안해도 원전이 재생에너지보다는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다르다.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라자드의 분석 결과를 보면, 원전 건설이 시장에 맡겨져 있는 미국에서 보조금을 제외한 기준으로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평가할 때 원자력 전기는 이미 2011년부터 풍력 전기보다 비싼 에너지가 됐다. 지난해 엘시오이는 원전이 1메가와트시(MWh)당 163달러로, 평균 37달러인 재생에너지의 4배였다.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에 맡겨져 있는 나라들에서 신규 원전이 거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원전이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공식 블로그에서 ‘타전원 대비 우수한 경제성’을 SMR의 장점으로 강조하며 “모듈 형태로 설계·제작되기 때문에 대형 원전에 비해 건설기간이 짧고 비용이 저렴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설명은 반만 맞다. 한국의 대형원전 건설단가는 세계 최저 수준인 ㎾당 3700달러 대까지 내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는 i-SMR은 ㎾당 4000달러 달성을 “매우 도전적인 목표”로 잡고 있다. 설비용량 대비 건설비가 대형원전보다 싼 SMR은 생각하기 어렵다. SMR은 설비용량이 커질수록 단위 발전량당 건설비가 적게 드는 ‘규모의 경제’와 거꾸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력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SMR의 특징인 모듈형 시공을 통해 경제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설비를 공장에서 모듈 형식으로 만들어 와 설치하는 방식으로 인허가와 공사 기간을 단축해 부대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경제성면에서 대형 원전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것은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전문가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i-SMR 연구개발을 이끄는 임 소장은 “경제성면에서는 SMR이 대형 원전보다 유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대형원전에서 5~6년 걸리는 공기를 2~3년으로 단축해 긴 공기에 따른 직간접 비용을 줄여 대형원전까지 내려가 보자라는게 대부분의 SMR이 추구하는 바”라고 말했다.
원전은 안전 문제 때문에 운영자가 임의로 세우거나 시동을 걸 수 없다. 정지한 원전을 다시 돌리려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경직성 때문에 원전은 일단 가동되면 정비를 위해 멈출 때까지 24시간 최대 출력으로 발전해 전력 수요의 가장 밑바닥을 채워주는 기저 발전원이 돼 왔다. 가동 중 발전출력 조절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해 5월 신고리 원전 3·4호기에서 처음 이뤄진 가동 중 출력 조절 사례를 보면 출력의 20%를 내리고 올리는데 각각 8시간이 소요됐다.
이런 원전의 특성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에 부담이 된다. 태양광과 풍력 등은 변동성이 크지만 인위적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원전보다도 더 경직적인 발전원이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려면 나머지 발전원들이 재생에너지에 맞춰 발전량을 조절해 전력망을 안정시켜줘야 한다. 그렇게 수요과 공급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전력의 주파수가 급변해 정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수요 변화에 맞춰 빠르게 출력을 조절하는 이른바 ‘부하추종운전’ 기능은 유럽에서는 원전에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원전은 이런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도 마찬가지다. 전력계통 전문가들이 기존 원전을 재생에너지와 공존하기 힘든 발전원으로 꼽는 이유다.
원자력공학계는 SMR이 기존 원전의 경직성 문제를 해결한 유연한 발전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연구개발 중인 다양한 SMR들이 모두 빠른 출력 조절이 가능하도록 개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우리가 개발하는 i-SMR은 최저 30%~최대 100% 출력 범위에서 분당 5% 속도로 오르내리게 해, 석탄발전기를 넘어서 가스발전기 수준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신고리 3·4호기에서 전력수요 대응 목적으로 처음 이뤄진 출력 조절 속도는 분당 0.04%에 불과했다. 더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은 안전 때문이다. 원전 설계 기술자인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잦고 빠른 출력 조절은 원전 설비의 피로도를 높여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SMR이 원전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성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까지 유연성을 갖출 수 있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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