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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우크라 전쟁이 부른 ‘에너지 독립 운동’…기후위기에 약일까 독일까

등록 2022-03-24 06:59수정 2022-03-31 02:33

[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
유럽, 러 천연가스 대체방안 찾기에 사활
재생에너지 확대에 탈원전 일정도 늦춰
석탄발전도 회귀 조짐에 유엔 총장 경고
전문가들 “장기적으론 기후위기에 도움”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로 진입하는 친러 반군 탱크. 러시아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장악하기 위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로 진입하는 친러 반군 탱크. 러시아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장악하기 위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의 에너지 계획을 바꿔 놓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에너지 계획에 때로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는 러시아산 에너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대체 에너지원을 확보하는데 머리를 싸매는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이 지구의 기후위기 대응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유럽연합 27개국과 영국은 2019년 천연가스 소비량의 37%, 2021년 천연가스 소비량의 32%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았다. 러시아가 가스관 밸브를 조이거나 잠그면 발전과 난방용 에너지 조달에 있어 큰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서 벗어나려는 유럽 국가들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러시아 이외 나라들로 천연가스 수입선을 다변화하면서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방향으로 잡고 있다. 천연가스 소비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산으로 충당하고 있는 독일의 연립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전력부문 재생에너지 비중 100% 목표 달성 시점을 2050년에서 2035년으로 15년 앞당기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을 빠르게 늘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이달 초 회원국들에게 “우리를 명시적으로 위협하는 공급자에게 의존할 수 없다”며 러시아산 화석에너지에서 독립하기 위한 에너지 계획을 제안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확정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리파워이유’(REPowerEU)로 명명된 이 계획은 천연가스 수입선 다변화, 바이오메탄과 녹색 수소 생산·수입 확대, 에너지 소비 효율화,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기반시설의 병목현상 해소 등을 통해 ‘2030년 훨씬 이전’에 러시아산 천연가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풍력 발전 설비 480기가와트(GW), 태양광 발전 설비 420GW를 추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개로 유럽의회에서는 집행위가 지난해 7월 제출한 ‘피트 포 55’(Fit for 55)에 포함된 재생에너지 지침의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40%를 45%로 높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피트 포 55는 유럽연합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 입법 패키지다.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원자력 발전도 주요 대안으로 떠올랐다. 탈원전을 추진해 온 독일 정부마저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자 올해 말까지 폐쇄하기로 한 원전의 계속 가동을 논의한 것은 상징적이다. 검토 끝에 독일은 탈원전 일정을 바꾸지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2025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기로 했던 벨기에는 최근 기존 탈원전 계획을 수정했다. 1985년부터 가동해온 원전 2기를 10년 더 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벨기에는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 집행위가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던 나라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현재 약 15%인 원자력 발전 비중을 25%로 높이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있다. 원자력 발전 확대는 해상풍력 발전 확대와 함께 영국 정부가 곧 발표할 에너지 안보 계획의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는 게 영국 언론의 예상이다.

이 가운데 특히 원자력 발전 확대 목표를 두고는 긴 사업 기간과 막대한 투자 비용을 들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영국이 러시아발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자급으로 정책을 완전 선회해 해상풍력 목표를 대폭 상향할 예정”이라며 “원전 추가 건설도 포함될 것으로 보이나 건설에 15년가량 소요돼 에너지 수급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낮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량도 필요하다고 바로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독일 등이 확대하려는 해상풍력 발전은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돼 에너지 분야에서 퇴출 0순위로 꼽혀 밀려나던 석탄발전도 새 기회를 맞는 형국이다.

에너지 수급 불안에도 탈원전은 포기하지 않기로 한 독일 정부도 탈석탄은 양보를 할 수 있다는 태도로 돌아섰다. 탈석탄 일정에 따라 발전을 중단하는 일부 석탄 발전소를 퇴출시키지 않고 예비 용량으로 남겨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2030년 완료하기로 한 탈석탄 일정이 더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외신을 보면 이밖에 2025년까지 석탄 발전을 중단하기로 한 이탈리아와 체코, 불가리아 등도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단계적인 탈석탄 계획을 유보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는 이런 움직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에이피(AP)>통신과 <비비시(BBC)> 등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21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주최한 지속가능성 서밋 화상 연설에서 “주요 경제국들이 러시아산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것을 모든 것의 우위에 두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단기적 (화석연료 확대) 조처가 화석연료에 대한 장기적 의존으로 이어져 (기후위기 억제 목표인) 1.5도로 향한 창을 닫아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이런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련의 국제 갈등이 장기적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에 도움이 될 가능성을 높게 본다. 박훈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에서 약속했던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러시아발 전쟁은 화석연료 가격의 변동성을 부각시키고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오일 위기가 그린산업의 출발점이었던 것처럼 그린산업의 확산 속도를 높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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