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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대기업 특혜냐 재생에너지 활성화냐…환경-노동단체 충돌 왜?

등록 2021-04-01 14:19수정 2021-12-29 14:59

[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
재생에너지업자-기업 전력 직계약 허용에
환경 쪽 “적극 환영” 노동 쪽 “규탄” 성명
에너지 전환 빨라지며 갈등 이어질 전망
“정의로운 전환으로 극복해야 탄소 중립”
그린피스 활동가가 지난 2019년 4월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 기업PPA 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활동가가 지난 2019년 4월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 기업PPA 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전력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점을 적극 환영한다”(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대기업에 특혜를 주고 판매시장을 민영화하는 법안 통과를 규탄하며, 시행 철회를 촉구한다”(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재생에너지 발전업자와 기업이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는 것을 허용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한 뒤 나온 환경과 노동 쪽의 상반된 반응입니다. 환영 성명을 낸 그린피스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세계적 환경운동 단체입니다. 규탄 성명을 낸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노사)는 에너지정의행동과 같은 환경운동 단체도 들어와 있지만, 기본적으로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가 중심이 돼 노동 쪽 목소리를 주로 내온 연대조직입니다.

환경단체와 노동단체는 지향점은 달라도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권, 노동권 등을 둘러싼 보수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에서는 언제나 같은 편에 서 있었습니다. 4대강 사업에 의한 환경 파괴를 막으려는 4대강 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에는 민주노총이 참여해 힘을 보탰습니다. 비슷한 시기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달려가는 희망버스에는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 온 환경단체와 노동단체가 이번처럼 정면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례적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전기 판매는 한국전력만 가능합니다. 전기사업법이 발전사업과 판매사업의 겸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기사업법 하위 법령 개정까지 마무리돼 기업 PPA가 본격 도입되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에 한해서는 발전업체가 기업에 직접 팔 수 있게 됩니다.

그린피스는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기업들이 발전업체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직접 구매하게 하는 제도 도입을 주장해 왔습니다. 기업 PPA 도입이 글로벌 기업 사이에 확산되는 ‘RE100’ 캠페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이 단체의 기대입니다.

재생에너지(RE)로 만든 전기만 100% 사용하는 이 캠페인에 국내에서는 에스케이(SK)그룹의 일부 계열사와 아모레퍼시픽이 가입한 것이 전부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기만 사서 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 초부터 한전의 중개로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와 전력구매계약을 맺는 ‘제3자 PPA’가 허용된데 이어 앞으로는 한전을 통하지 않는 ‘직접 PPA’까지 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린피스가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선택 폭이 넓어져 ‘제도가 없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 과거의 장벽이 해소된 것”이라며 반기는 이유입니다.

반면 에노사는 “기업 PPA의 목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말하지만, 실제 목표는 숨겨져 있다”며 법 개정 의도부터 불신하는 듯합니다. 이들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녹색요금제나 제3자 PPA 등 다른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데도 PPA가 집요하게 추진된 것은 대기업에게 이득이 되고, 판매시장 개방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할 역량을 갖춘 대기업이 양질의 저렴한 재생에너지를 선점하고, 일반 소비자는 나머지 비싼 재생에너지를 떠 안아 전력요금을 더 내게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해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은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RE100 참여 압박과 환경단체의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에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못한다는 핑계를 대왔다. PPA는 이런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배출에 더 책임을 지고 에너지 전환 비용을 부담하며 전기를 쓰게 하려는 것”이라며 대기업 특혜론을 일축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대기업이 재생에너지 전기를 싸게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게 될 때는 우리 사회 전반의 재생에너지 경제성이 올라간 상황일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본인들의 바잉파워(구매력)를 가지고 대규모 재생에너지 전력을 다소 저렴하게 장기고정가격으로 구매해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하는 것을 왜 뭐라고 해야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린피스나 에노사 모두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충돌하는 지점이 많습니다.

에노사는 글로벌 기업 사이에 확산되는 RE100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을 보입니다. 구준모 에노사 정책실장은 RE100를 두고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선진국 대기업들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강화해 해당국의 정치경제적 권력과 전체적인 기업권력을 유지 강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에노사 쪽에서 기업 PPA 법안 통과에 특히 날선 태도를 취한 밑바탕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대한 전력 판매사업 허용이 대기업의 판매시장 진출을 불러 전력산업 민영화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습니다. 에너지를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전력산업 민영화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중앙 집중이 아닌 분산형 재생에너지 체계를 에너지 전환의 한 방향으로 보는 환경단체 쪽에는 최소한 전력 판매 부문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주요 국가 가운데 동유럽 몇 개국이나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력산업이 우리처럼 한전의 수직독점구조로 운영되는 나라가 없다. 기업 PPA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한전이 독점한 송전사업의 완전 분리가 선행되고 전력판매시장이 경쟁체제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사회가 ‘2050 탄소 중립’으로 달려가면서 환경과 노동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일자리 조정과 노동 환경 악화 같은 노동 쪽에서 양보하기 쉽지 않은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란은 수송 부문 기후변화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기차를 둘러싸고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노조에서 부품 수가 적어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전기차 생산 물량을 늘리는데 반대하는 것이 그런 사례입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양쪽 입장이 미묘하게 부딪치는 이런 문제들은 앞으로 계속 이슈가 될 정의로운 전환의 문제들이다.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이것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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