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에서 구조된 부상자가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이후 심정지 상태 피해자 76명이 인근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 몰린 것으로 확인됐다. 순천향대병원은 먼저 도착한 환자들에 이어 심정지자까지 집중되면서, 영안실 바닥까지 주검을 수용하는 등 아비규환이었다. 보건·소방당국이 병원별 수용여력 등을 고려해 사상자를 분산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31일 <한겨레>에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30일 오전까지 순천향대병원에는 84명의 사상자가 이송됐으며, 이 가운데 76명은 이송 당시 심정지 상태였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의료기관 집계를 토대로
사상자 82명이 순천향병원에 이송됐다고 보도했으나, 복지부 최종 집계로 2명이 추가됐다.
참사 직후 사고 현장에서는 심정지자 125명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주변 동네 병원과 원효로 실내체육관(용산구 원효로3가) 등에 임시로 분산돼 있었다. 이 중 동네 병원 등에 매트를 깔고 뉘었던 심정지자 76명이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고, 모두 이곳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에 앞서 사고 초기 중상자와 경상자 각각 4명이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1㎞) 종합병원인 이곳 응급실로 옮겨졌다. 중상자 중 3명은 심폐소생술(CPR)을 받던 중 사망했고, 1명은 31일 오후 3시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상자 4명은 응급처치를 받고 귀가했다.
치료 중 숨진 3명을 포함해 참사 사망자가 79명에 이르자 순천향대병원 영안실은 ‘포화 상태’가 됐다. 병원 쪽은 응급의학과 이외 당직 의사들까지 동원해 심정지자들의 사망 여부를 판정하는 한편 영안실 온도를 낮춰, 시신 보관함 바깥의 영안실 바닥에도 시신을 보관해야 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30일 오전 3, 4시쯤에 이미 안치실이 꽉 차서 여분의 모포와 병상 시트 등을 동원해 바닥에 추가로 임시 안치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핼러윈 기간마다 응급환자 증가를 경험한 탓에 야간 근무자를 늘려놓았고 비번이었던 의료진과 사무직도 참사 후 비상출근했지만, 79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심정지자를 이처럼 한 병원에 집중시킨 것은 소방·보건당국의 오판이라는 지적이 인다. 사고 현장 반경 약 5㎞ 이내에는 국립중앙의료원(중구 을지로), 인제대 서울백병원(중구 저동2가) 등 다른 종합병원이 있었지만, 전체 심정지자의 63%가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유인술 충남대 교수(응급의학과)는 “심정지자가 병원 한곳으로 몰리면 사망 판정과 사망 진단서 작성 등에 의료진이 투입돼, 응급실까지 마비시킬 위험이 있다”며 “재난 상황에서는 심정지자도 분산 배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심정지자에 대해서는 재난 현장에 파견되는 재난의료지원팀(DMAT) 소속 의사가 현장에서 사망 판정을 하도록 해 병원 이송 시점을 늦추는 대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난의료지원팀 의사의 주역할은 환자 중증도 분류와 응급처치이기 때문에 사망판정은 이송 후로 맡기는데,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소생 확률이 비교적 낮은 심정지자 이송은 소방당국이, 중·경상자는 복지부가 관할하는 환자 이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경상자의 경우 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상황실)이 의료기관별 가용 병상 현황 등을 바탕으로 구급차들의 이송을 관제하고, 심정지자 이송은 상황실과 소통 없이 소방본부 현장 지휘소의 판단으로 이뤄지는 이원화로 인해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재난 현장에서는 재난의료지원팀이 의료 당국으로부터 병원 정보를 받아 소방에 공유한다. 이번 사고는 희생자가 많고 구급차 접근 등이 힘든 여건에서 정보 소통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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