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기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보도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여의도에서도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할 목적으로 열리는 국정감사는 입법부의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자리다. 지난 8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7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9기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국정감사 보도를 집중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민정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경미 위원(섀도우캐비닛 대표), 김보림 위원(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준범 위원(한라홀딩스 부사장), 임자운 위원(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 홍윤희 위원(장애인 이동권 콘텐츠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황세원 위원(일in연구소 대표)이 참여했다. 한겨레에서는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과 정은주 콘텐츠총괄, 정환봉 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김민정 이번 회의에서는 국정감사(이하 국감) 보도를 살펴보기로 했다. 국감 보도를 보면 대체로 말싸움 등 현장 보도와 자료를 중심으로 한 보도로 나뉜다. 한겨레의 경우 현장 보도는 많지 않았고, 국감 자료를 바탕으로 한 보도가 많았다. 눈에 띈 것은 한겨레 보도 다수가 국감 자료를 그대로 받아서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추가 분석과 검증을 거쳤다.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를 한겨레와 국립중앙의료원 데이터센터가 함께 분석한 10월20일치
‘공공병원 꿰찬 코로나, 밀려난 취약계층’ 기사의 경우 한겨레가 자료 수집과 분석을 주도하면서 의료 불균형 문제를 제기한 점에서 인상 깊었다.
국감 발언이나 자료를 검증한 기사도 눈에 띄었다. 10월13일치
‘실습생도 산안법 대상, 노동부마저 모른다면…’ 기사는 요트업체에서 따개비를 청소하기 위해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과 관련한 질문에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이 “노동자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발언한 대목을 짚은 내용이었다. 지난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잠수 작업을 할 경우 현장실습생을 노동자로 보고 법을 적용하게 돼 있기에 이 같은 발언은 문제였다. 이런 대목을 잘 지적했다. 10월28일치 팩트체크 기사인
‘감사원 부적격혈액제제 보고서 파문 뜯어보니’ 역시 수혈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이 이뤄졌다고 오해할 수 있도록 감사원이 발표한 것을 바로잡아 준 점이 좋았다. 같은 날 기사인
‘시 곳간이 시민단체 ATM이라더니…근거 못대는 서울시’ 역시 서울시 발표의 문제점을 잘 짚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인 기사는 10월21일치
‘정부, 출입국 얼굴사진 1억7천만건 AI업체에 넘겼다’였다. 법무부가 민감 정보를 당사자의 추가 동의 없이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민간업체에 넘긴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한 점이 좋았다.
황세원 국감에서 나오는 자료는 데이터의 신뢰성도 높고 중요한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몇몇 자료는 묶어서 보도했더라면 좋았겠다. 예컨대 한겨레가 참여연대와 함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 결과를 분석해
한국전력의 고위직 퇴직자들이 같은 그룹사나 재출자회사에 다수 취업한 사실 등을 보도했다. 며칠 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주요 보직을 환경부 고위 퇴직자들이 사실상 전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또 나왔다. 두 가지를 연결해서 보도했다면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그런 시도가 있었으면 한다.
김경미 보통 종이신문을 보지만 인상 깊었던 기사는 온라인으로 다시 찾아보는데, 한겨레 누리집(홈페이지)에는 국정감사 기사를 의제나 이슈 중심으로 찾기가 어려웠다. 지면에서 국감 기사를 고정적으로 배치하기 어렵다면 디지털에서라도 묶었으면 한다. 한국일보는 국정감사를 요일별로 볼 수 있는 서브페이지를 구축해뒀더라.
김보림 출입국 얼굴사진을 민간업체에 넘겼다는 기사는 정보인권 침해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이것이 왜 문제인지 잘 짚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가 과거 서울시 예산이 시민단체에 막대하게 들어갔다고 발표한 뒤 몇몇 언론에서는 예산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 살피지도 않고 비판만 했는데, 한겨레는 오세훈 시장이 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따지면서 비판을 한 점이 인상 깊었다. 다만 국감에서 산업재해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참고인들이 출석해 발언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점이 아쉬웠다.
홍윤희 국감은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숙제를 점검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올해는 정치 이슈에 휩쓸려 아쉬운 대목이 많았다. 국감의 본래 기능에 소홀해진 느낌이다. 대선 직전 국감이라서 그런 듯하다. 그래서 한겨레가 과거에서부터 대선 전 국감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고 문제를 살피는 기사를 써보면 좋겠다. 정치권은 정치 논란을 통해 얻는 이익이 있겠지만, 언론사는 그 논란 때문에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가 덮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일을 하게끔 할 수 있는 국감 보도가 필요하다.
임자운 10월1일부터 11월7일까지 국감 기사를 검색해봤는데 대장동과 고발 사주 기사를 빼니까 절반 가까이 줄더라. 국감 기사가 특정 정치 이슈 중심으로 보도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 기사를 중심으로 봤다. 두 가지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하나는
삼성화재 노동조합 관련 기사다.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겨레 외에 다른 언론사에서는 거의 쓰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노조 없이 평사원협의회(평협)를 대체 조직으로 운영해왔는데, 실제 노조가 설립되니까 평협이 노조로 전환해 대표 노조 지위를 얻었다. 삼성이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때도 비슷한 일을 해서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했지만 그 뒤에도 삼성 계열사 중 하나에서 비슷한 상황이 확인된 것이다. 이 부회장 가석방 이후 무노조 전략이 부활하는 중요 계기라고 생각한다. 한겨레도 기사에 이런 의미 부여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위원장도 언급했는데, 노동부 기조실장이 특성화고 실습생을 “노동자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발언한 것을 비판한 기사다. 그 기사를 보면서 해당 사안을 깊이 아는 기자였기에 이런 발언을 잡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부 간부가 법이 바뀐 것도 모른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적이다. 한겨레가 좋은 기사를 썼다고 본다.
김준범 출입국 얼굴사진이 민간업체에 넘어갔다는 보도와 관련해서 실제 구글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이 인공지능 훈련 대상으로 활용되는데, 그런 사례와 이번 사건의 차이는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건은 다양한 이슈와 연결된다. 민간기업이 정부 자료를 무료로 제공받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인지, 이런 데이터를 국가 안보 등에 활용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여러 쟁점이 있다.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모아서 후속 보도를 해줬으면 한다.
김민정 추가적으로 짚을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정부는 개인정보를 민간에 제공한 것이 아니라 처리 위탁을 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실상 위탁이 아니라 당사자 동의 없이 민감정보를 민간업체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 또 보도 이후에야 위탁 사업자가 누군지 공개했다. 절차적으로도 여러 문제가 있어 지속적으로 문제를 짚어주면 좋겠다. 국감 보도 관련해서 제안을 하실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황세원 국감 현장에 기자가 있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 나오는 질의 등을 정리해주는 코너를 하나 만들어주면 어떨까 한다.
김준범 오늘의 국감 이슈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국감이 끝난 뒤에도 전체적으로 내용을 정리해주는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임자운 국감에서 나오는 자료들이 무척 많은데, 언론사에서 아카이브라도 만들어 정리를 해주면 독자들이 관심 있는 상임위원회 자료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은주 아무래도 인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과거 국감 취재 때 하루 종일 발언을 타이핑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뽑아서 기사를 썼던 순간이 떠오르는데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다. 다만 조언해주신 내용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말씀하신 것 중에 국감 기사를 이슈별로 모아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법을 고민하겠다.
권태호 박정희 때 국감이 중단되고 6공화국부터 부활되면서 1990년대에 국감은 큰 이슈였다. 행정부를 불러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큰소리를 치는 것을 국민들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모습이 드문 일이 아니고 국회 역시 국감을 이슈 중심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어서 그 중요성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다. 국감 기사를 주제나 상임위별로 묶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김민정 국감 보도 이외에 다른 보도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자.
황세원 11월3일에 나온 ‘
무학 노인들, 코로나 사망에 더 취약했다’라는 기사의 경우 노인을 ‘60살 이상’으로 분류했는데 너무 넓게 연령대를 잡은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 사망자는 ‘80대 이상’이 절반 이상인데, 이 정도 연령대에는 무학 비율이 높을 수 있다. 이 부분까지 설명을 해주는 기사를 썼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접종자 500만명: 그들은 왜 백신을 꺼리나’ 기획 기사는 제목에서 드러난 취지가 좋았다. 그들이 왜 백신 접종을 받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의도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백신 접종률이 얼마나 되면 미접종자가 있어도 괜찮은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 기준이 없으니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 문제도 발생하는 것 같다.
김경미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이 곧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된다는 기사와
쿠팡이츠가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서 산업안전법을 위반했다는 기사를 잘 봤다. 노동자의 삶과 연결된 안전 문제를 다뤄줘서 고마웠다. 다만 실제 라이더들이 보험 가입이나 교육을 받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지, 그들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지 등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더 많이 담아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보림 한겨레에서 두 명의 기자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취재하고 있는데, 정말 잠을 안 자는구나 할 정도로 많은 기사가 나오고 있다. 매년 당사국총회가 열릴 때 우리 정부가 어떤 발표를 했는지 정도만 보도됐는데 이번에는 발 빠르게 재미있는 기사가 많이 올라와 인상이 깊다. 특히
한국이 2030년 석탄발전 퇴출을 시사하는 성명에 서명을 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는 노력한다는 전제에 동의한 것이지 탈석탄 시점을 명시한 것은 아니라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잡아낸 것도 좋았다. 글래스고에서 기후위기 논의가 불충분하다고
시위를 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담겨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정환봉 소통데스크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