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촬영회 성추행 의혹.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유명 유튜버 양예원씨와 양씨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스튜디오 운영자 사이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두고 ‘양씨가 원해서 한 일이며, 양씨가 스튜디오 운영자를 무고로 몰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검증하려는 태도는 피해자의 순결성을 요구하는 2차 가해일뿐더러, 범죄행위인 성폭력 상황 자체를 지우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27일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사진촬영회에서 사진이 찍힌 뒤 피해 모델들이 취했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의외로 피해자다운 모습, 순결하고 무결한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이런 모습 때문에)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촬영했다고 손가락질 받기 쉽지만,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 할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산업화된 스튜디오 촬영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한 매체는 스튜디오 운영자인 ㄱ씨가 3년 전 양씨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토대로 “양씨가 먼저 일을 잡아달라고 했다. 강제추행을 했다면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사건처럼 성폭력 피해자의 태도와 언행 등을 제삼자들이 앞장서 판단하고,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와 ‘보호하지 않아도 될 피해자’로 나누는 것은 성폭력 범죄 보도에 대응하는 한국 사회의 오랜 관성이다. 문제는 이런 관성이 작동하는 원리에 ‘피해자 보호’라는 당연한 인권 보장의 관점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피해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없는 ‘순결한 피해자’여야만 그 진술과 피해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가 이번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성폭력 피해의 호소에도 질문의 방향이 피해자에게만 돌아가는 점 역시 극복해야 할 관성으로 꼽혔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진술이 매우 일관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심각한 피해를 당했는데 어떻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얘기할 수 있지?’라며 피해자들을 의심한다. 피해자가 일관되지 않은 발언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관된 얘기를 하더라도 이를 믿지 않고 의심하려는 잘못된 통념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과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사성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촬영물을 확보한 이상, 피해자는 가해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무리한 요구에도 일단 수긍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치심을 느끼게 된 생존자가 ‘자포자기한’ 상태로 폭력 상황에 노출되는 일은 전형적인 성폭력 생존자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윤김지영 교수 역시 “자신의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성폭력 생존자가 이를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 하거나 사실과는 다른 모순적인 얘기를 하는 상황은 매우 흔하다”며 “이를 두고 ‘피해자가 무고죄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양씨는 26일 <에스비에스>와의 인터뷰에서 “(실장이) 이미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등 협박으로 들리는 말을 했다”며 이미 찍힌 사진 등으로 인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촬영에 응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스튜디오 촬영회’라는 성폭력의 현장에서 여성 모델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사성은 “여성을 촬영한 촬영물을 판매하고, 이를 공급받은 유통 플랫폼은 시청자들을 통해 돈을 벌고, 시청자들은 이를 다른 플랫폼으로 재유포한다. 이 연결고리에서 여성은 철저한 재화이자 언제든 출금 가능한 ‘에이티엠’(ATM)이 된다“며 “이와 같은 구조를 이용해 돈을 버는 가해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순결성을 따지는 질문과 비판의 방향을, 성폭력을 체계화하는 구조 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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