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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0미터 하늘 위, 처음 만나는 자유

등록 2016-06-30 13:35수정 2016-06-30 14:08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이정국 기자가 도전한 스카이다이빙…중력에 몸 맡기고 해방감을 느끼다
고도 3300m에서 낙하중인 이정국 기자.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 제공
고도 3300m에서 낙하중인 이정국 기자.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 제공

변기에 걸터앉았는데,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왜 한다고 했지?’ 18일 새벽 4시, 아랫배가 요동쳤다. 전날 맥주와 함께 먹은 불닭볶음면 때문이다. 아니, 분명 ‘낙하 스트레스’였다.

한주 전인 10일,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에 스카이다이빙 체험 등록을 할 때만 해도 스트레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 속 공수부대 집단 낙하의 장엄함이나, 첩보 영화 속 예술적 낙하 액션은 꿈꾸지도 않았다. 스카이다이빙이 레저스포츠로 각광받는 현실에서, 중력의 끌림에 몸을 맡긴 ‘자유낙하의 쾌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것도 숙련된 교관과 함께 뛰어내리는 탠덤(Tandem) 강하 체험일 뿐이었다. 차종환 교장은 “낙하산이 안 펴지는 경우는 결단코 없다. 100% 안전하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체험 하루 전날이 되자 불안감이 밀려왔고, 매운 음식이 당겼고, 매워서 찬 맥주를 들이켰다.

그렇게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다 날이 밝았다. 강하 장소인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 일정표를 적은 화이트보드엔 100여명의 이름이 빼곡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리려고’, 주말 이른 아침에, 모였다는 게 신기했다. 차 교장은 “바람도 잔잔하고 다이빙 조건이 좋다”고 했다. 문제는 잔뜩 긴장한 ‘나의 괄약근’뿐이었다. “저기, 화(장실)…”라고 말하는 순간 한 교관이 다가와 어깨에 하니스(멜빵)를 채웠다. 끈을 조이니 어깨와 허벅지 안쪽이 조여왔다.

“자, 타세요.” 차 교장이 소리쳤다.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조금 전 결심을 내뱉을 수 없었다. 묵묵히 헬리콥터에 올라타야만 했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개그맨 김병만씨, 그는 교관이 되기 위한 정식 교육을 받는 중이라 했다. 500회를 뛰어내려야 교관 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데, “423번을 뛰어내렸다”고 했다.

이륙한 헬리콥터는 한참을 치솟았다. 대류권을 뚫고 성층권으로 올라가는 줄 알았다.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멍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교관의 질문에 “이에스시(ESC) 파이팅!”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마누라, 사랑해”라고 외쳤다.

뛰어내리라니 첨엔 멍했다
붕~, 으아…, 우와아!
날았다, 날고 있다, 날아버렸다
“마약 같다”던 김병만 말이 맞았다

고도 3300m에서 낙하중인 이정국 기자.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 제공
고도 3300m에서 낙하중인 이정국 기자.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 제공

교관이 허벅다리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낙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륙한 지 17분, 헬리콥터의 문이 활짝 열렸다. 고도 3300m였다. “아, 추워!” 지상은 이른 여름 더위가 한창인데, 이곳은 늦가을이었다.

먼저 김병만씨가 강하했다. 그것도 나를 바라보며, 거꾸로, 느긋하게.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뒤이어 내 차례. 헬리콥터 발판에 발이 닿았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리고 솔직히 그때부터 잠시 동안, 기억이 없다.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어느새 떨어지고 있었다. 놀이공원 바이킹의 맨 끝줄에 탈 때 느낌의 200배는 되는 출렁임이었다. “으어어어어어억!, 아아아아아악!”

시속 200㎞, 중력에 끌려 한동안 그렇게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촬영하는 교관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우아아아~.” 환호성이 터졌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게 아닌가!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도르핀…. 기분 좋아지는 온갖 호르몬이 급격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이래서 하는구나’ 싶었다.

개그맨 김병만씨가 누운채로 떨어지고 있다.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 제공
개그맨 김병만씨가 누운채로 떨어지고 있다.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 제공

갑자기 위로 솟구치며, 어깨가 빠질 것 같은 통증이 엄습했다. 낙하산이 펴진 것이다. “아이쿠, 아파.”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그때부턴 또다른 세상. 낙하 속도가 줄어들자, 교관이 지시하는 대로 낙하산 방향을 바꾸며 풍경을 감상했다. 굽이쳐 흐르는 한강 상류, 아파트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아래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나. 이렇게 목청껏 소리를 질렀던 적이 있었나. 뭔가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 또한 취재, 일로 시작한 것이지만, 매일 겪는 ‘같은 하루’에서 잠시 벗어난 듯 해방감이 밀려왔다.

자유로운 이 기분, 그저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발밑으로 땅이 다가왔다. 사전에 교육받은 대로,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몸을 엘 자로 만들었다. 착지. 충격은 없었다. “아하하하하핫하아.” 웃음과 한숨이 섞인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자유낙하 40초, 낙하산 낙하 2분40여초. 강하시간은 3분이 조금 넘었지만 뇌 속에 기록된 시간은 몇시간 분량이었다. 그만큼 강렬했다.

멜빵을 벗고 걸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몸이 죽었다 살아났다고 느낀 걸까. 별다른 운동을 한 것이 아닌데, 온몸에 진땀이 흘렀고 허기가 몰려왔다. 신기하게 배탈은 멎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겨드랑이 쪽엔 피멍이 들어 있었다. 낙하산이 펴지는 순간의 충격을, 내 생애 첫 낙하는 그렇게 내 몸에 또다른 기록을 남겼다. 뱃속이 간질간질하던, 그 낙하의 느낌이 자꾸 생각났다.

“마약 같아요. 하고 나면 계속 생각나고, 자면서도 생각나요. 기자님도 한동안 그럴 거예요.” “왜 하느냐”는 질문에 김병만씨가 한 답이 귓가를 맴돌았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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