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2020년 최강자로 우뚝 선 엘에이(LA) 다저스 선수들. USA투데이 연합뉴스
엘에이(LA) 다저스의 32년 만의 우승으로 방점을 찍으며 사상 초유의 시즌이 막을 내렸다. 봄이 아닌 여름부터 달린 메이저리그(MLB) 2020시즌은 어느 때보다 짧았지만 어느 때보다 숨 가쁘게 달렸다. 162경기 시즌이 마라톤이라면, 60경기 시즌은 단거리 달리기였다.
2020시즌은 ‘모험’이었다. 모험의 사전적 정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감이 맴도는 사회 분위기 속에 리그 개막을 강행한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게다가
롭 맨프레드 사무국 커미셔너는 야구의 토대를 뒤흔드는 변화까지 시도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연장전 승부치기가 시행됐다. 케이비오(KBO)리그와 달리 메이저리그는 시간, 이닝 제한이 없는 끝장 승부다. 승부가 나지 않으면 설령 내일이 오더라도 야구는 계속 되어야 했다. 그런데 올해는 연장전에 들어가면 가상의 주자를 2루에 두고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점수를 냄으로써 경기를 끝내려고 한 것이다. 그 결과, 이번 시즌은 가장 긴 연장 승부가 13회였다. 그것도 단 두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체 경기 비중으로 따지면 0.2%에 불과했다. 2019년은 13회 이상 경기 비중이 1.5%(37경기) 2018년은 1.6%(40경기)다.
끝을 알 수 없는 장기전이 이전보다 줄어들면서 경기 평균 시간도 3시간6분으로 단축됐다(2019년 3시간10분). 로스터 확장으로 인해 경기당 평균 투수 기용이 역대 최다(4.43명)였던 점을 감안하면 두드러지는 성과다. 하지만 경기 평균 시간이 단축된 배경에는 맨프레드 커미셔너의 또 다른 강수가 있었다. 여론이 극단적으로 나뉜 7이닝 더블헤더였다.
야구는 9이닝 경기다. 불가피한 콜드게임을 제외하면 야구의 규정 이닝은 바뀐 적이 없었다.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부터’ 라는 말이 있듯, 야구에서 9이닝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도 ‘9이닝’을 포기했다.
올해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 취소 여부를 즉각 결정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경우도 염두에 뒀다. 더블헤더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7이닝 더블헤더를 도입했다. 가장 현실적으로 체감한 팀은 세인트루이스였다. 세인트루이스는 코로나19 때문에 초반 일정이 밀리면서 총 11번의 더블헤더를 감당해야 했다. 9월6일부터 2주 동안 6번이나 몰아서 치렀다. 9이닝 더블헤더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더블헤더 규정 이닝이 줄어들면서 선발투수 완투(45번)가 늘어났다. 7이닝 완투 경기가 11번이나 됐다. 1945년 이후 최다 기록인데, 7이닝 완투를 인정해야 되는지를 두고 시즌 내내 옥신각신했다. 실제로 7이닝 더블헤더는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야구는 현 시대에 맞춰 변해야 하지만, 야구의 근간을 무너뜨리면서 거부감이 심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의 모험은 정규시즌에 그치지 않았다. 단축 시즌이었던 올해는 포스트시즌 규모를 확대했다. 기존 10팀에서 16팀으로 늘렸고, 와일드카드 시리즈를 신설했다. 더 많은 팀에게 포스트시즌 진출 기회를 주면서 마지막까지 박진감을 높일 수 있었다. 여기에 약 2억 달러 이상의 TV 중계권 수익금을 창출해 정규시즌에 입은 손실을 충당했다.
커미셔너는 연장전 승부치기와 더불어 포스트시즌 확대가 내년에도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전체 절반이 넘는 팀들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면 자격 논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 올해만 해도 5할 승률을 넘기지 못한 두 팀(밀워키 브루어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갔다. 1번 시드를 확보해도 와일드카드 시리즈를 해야 한다면, 안정권에 접어든 팀들은 시즌 막바지에 느슨해질 것이다. 이는 오히려 경기의 질적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한편, 한국 선수들에게도 이번 시즌은 모험이었다.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은 바뀐 팀에서 적응력을 키웠고,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메이저리그 안착에 성공했다.
최지만(29)은 탬파베이 레이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하며 첫 출장을 했고, 추신수(38)는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길었던 여정이 끝이 났다. 이창섭 MLB 전문가
pbbl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