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모든 얼굴>이정우 지음. 한길사 펴냄. 1만5000원
잠깐독서 /
철학자 이정우(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씨가 현대 회화를 존재론적으로 탐색한 새 저서 <세계의 모든 얼굴>을 내놨다. 2004년 3월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한 내용을 다듬고 도판을 곁들여서 이해를 돕도록 했다.
철학자 이씨에게 “회화와 존재론은 ‘세계’를 그 근원에서 탐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때의 ‘세계’는 “유일무이한 전체로서의 세계”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책에서는 ‘世界’라고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세계’ 전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경험과 사유에 근거해 부분적인 세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개개인에게 관찰되고 체험된 각각의 세계가 전체로서의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지은이는 현대 회화가 각각 하나의 세계=면을 드러내면서 ‘세계’의 진정한 얼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본다.
지은이는 ‘전통 회화=재현, 현대 회화=표현’ 식의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재가 아닌 상상, 객관이 아닌 주관에 관여하는 듯이 보이는 현대 회화 역시 어디까지나 (외부)세계의 단면을 드러낼 뿐이다. 현대 회화는 재현을 파기했다기보다는 ‘세계’의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좋은 회화와의 만남은 세계의 발견이고 ‘세계’와의 새로운 만남이다.”
현대 회화의 양 극단을 대표하는 르네 마그리트와 프랜시스 베이컨을 보자. “마그리트의 세계는 의미가 끝없이 불안정하게 유동하고 정착하지 않는 세계(…)난센스의 세계이다.” 의미의 문제, 사물과 세계의 존재를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회화에 대한 회화, 메타 회화, 회화의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베이컨의 회화는 고기로서의 살이라는 바닥의 차원을 응시한다. 그런가 하면 사물의 물질성 또는 기의 운동을 발견한 잭슨 폴록, 그리고 동양적 정신을 추구한 바넷 뉴먼의 회화는 초월의 두 방향을 보여준다. 지은이는 1970년대 이후 회화는 뚜렷한 퇴조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화가들의 영혼이 죽지 않는 한 회화의 존재 탐구는 계속되리라고 믿는다”는 말을 결론 삼아 내놓았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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