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일대 아파트단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회의원들은 책임지지 않는 발언을 하고, 그 뒷수습은 공무원이 해야 하는 거죠.”
세무당국의 한 관계자는 11일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통계청장 등을 지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이 전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정부의
‘부동산 증여세 과세 오류’를 두고 한 얘기다.
유 의원은 전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으로 증여세를 더 낸 국민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유 의원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증여세는 증여재산의 현재가액에서 취득가액과 힌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 통계치를 적용한 가치 상승분을 빼는 만큼, 주택가격이 적게 오를수록 증여세를 더 많이 내는 구조”라는 논리를 폈다. 전임 정부가 통계상 집값 시세를 고의로 낮춰잡아 증여세 과세 대상인 증여 재산가액이 올라가고 납세자들이 세금을 더 내게 됐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감사원이 통계 조작 의혹을 제기한 한국부동산원의 2018∼2022년 통계를 적용해 납부한 토지·건물 등 부동산 증여세 납부 건수가 57만3천여건, 납부 세액은 106조224억원이라는 수치도 제시했다. 부동산원이 조사한 2017년 5월 이후 5년간 서울 집값 상승률이 19.46%로 민간 조사기관인 케이비(KB) 상승률(62.20%)에 크게 못 미치며 결과적으로 이 기간 ‘증여세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 등 일부 매체는 이 내용을 담아 보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 의원의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 기획재정부·국세청 등 세무 당국은 “집값 통계를 사용해 부동산 증여세를 매긴다는 건 세법을 모르고 하는 황당한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증여세는 무상으로 이전한 재산의 가액에서 비과세 및 채무액, 각종 공제 등을 제외한 금액을 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과세표준)으로 산정하고, 여기에 세율과 세액 공제 등을 적용해 과세액을 확정한다. 유 의원 주장이 틀린 것은,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제31조 ‘증여재산가액 계산의 일반원칙’)은 증여재산의 가액을 계산할 때 부동산 통계가 아니라 ‘시가’(시장가격)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ㄱ아파트 101동 101호를 증여한다면, 해당 아파트의 최근 매매 실거래가 또는 이와 비슷한 101동 102호의 실거래가를 법상 시가로 삼는다. 감정가격이나 경·공매가격도 시가로 인정한다. 만약 이런 참고 사례가 없다면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하는 ‘공시가격’을 재산가치 산정에 사용한다. 과세 당국 관계자는 “부동산 통계는 증여세 과세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부동산 통계가 등장하는 건 한 대목(제42조의3 ‘재산 취득 후 재산가치 증가에 따른 이익의 증여’) 뿐이다.
이 조항은 부동산 개발 또는 인허가 정보를 미리 알고 자녀 등에게 재산을 저가로 증여해 향후 자녀가 차익을 얻을 경우 추가로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과세 대상 차익은 현재 재산가격에서 취득가격과 통상적인 가치 상승분, 납세자의 가치 상승 기여분 등을 빼 계산한다. 이때 통상적인 가치 상승분은 상증세법 시행령(제32조의3)에서 ‘연평균 주택가격 상승률’을 통해 구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런 특수한 사례 역시 한국부동산원의 집값 통계를 쓰도록 명시한 것은 아니다.
통계청장 출신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유 의원 블로그 갈무리
유 의원이 제시한 통계 수치도 오류 투성이다. 그가 조작된 통계를 적용해 과다하게 세금을 매겼다고 밝힌 최근 5년 치 부동산 증여세 납세액 106조224억원은, 실제 납세자가 낸 세금이 아니라 증여세 과세 대상인 ‘재산가액’이다. 통계를 엉터리로 보고 숫자를 뻥튀기한 셈이다.
유 의원의 전날 국정감사 당시 지적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문제의 심각성을 저희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증여세 과세 근거인 주택 공시가격 업무 담당 부처의 수장이 엉뚱한 소리를 하며 납세자의 혼란을 부추긴 셈이다. 유 의원과 원 장관, 조선일보 등은 잘못된 정보를 시중에 퍼뜨려 “더 낸 세금을 돌려달라”는 납세자 민원이 쇄도할 판인데도 이같은 오류를 현재까지 바로 잡지 않았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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