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세월호’ ③ 화학물질 시설
화학물질사고 인명피해 증가 추세
올해 울산 화학사고만 벌써 16건
대부분 노후시설 관리 부실 탓
위험작업 외주화도 사고 부채질
화학물질사고 인명피해 증가 추세
올해 울산 화학사고만 벌써 16건
대부분 노후시설 관리 부실 탓
위험작업 외주화도 사고 부채질
2012년 11월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한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마을 텃밭의 고추들이 허옇게 말라 있다. 텃밭 뒤로 ‘불산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 식용불가’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초기대응 중요한데 정부 대책 부실
매뉴얼 있지만 사고때는 무용지물
주민들 “대피책자 요구해도 무시” 울산이나 여수 등의 대규모 산단에선 특히 설비 노후화 문제가 심각하다. 이곳 공장 시설들 대부분이 지어진 지 30~40년이 넘어 저장 탱크와 배관에 낡은 곳이 많다. 그런데도 설비의 내구연한 규정이 없어 문제가 생기면 땜질식으로 보수해 사용한다. 주요 산단 설비의 건설·유지·보수 업무 노동자들로 이뤄진 ‘플랜트 노조’의 최영철 조직쟁의실장은 “설비를 전면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투자를 하지 않으니 늘 노후된 부분에서 사고가 난다”고 짚었다. 산업계 전반에 확산된 위험 작업 인력의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도 사고 위험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수산단에선 200여개의 하청업체에 초단기 계약으로 고용된 2만여명의 노동자가 단지 안 공장 설비의 보수와 정비를 도맡고 있다. 최 실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대기업들이 보수·정비팀을 모두 아웃소싱(외주화)했다. 원청회사들은 공장을 빨리 재가동하려고 보수·정비 공사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적은 금액에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경력과 기술이 부족한 사람들을 투입하고 작업마저 서두르니 보수공사 기간에 사고가 많이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14일 여수산단의 대림산업 폴리에틸렌 원료 저장탱크 폭발뿐만 아니라 같은 해 1월28일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 누출, 지난해 5월10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의 아르곤가스 누출 등 대기업 사업장 안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로 숨진 사람은 모두 시설 보수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환경부가 집계한 지난 10년간의 화학물질 사고 현황을 보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사망 7명·부상 168명이다. 한해 평균 1명이 죽고 24명이 다친 셈이다. 그런데 2011년 이후엔 인명 피해가 더 증가하는 추세다(2011년 사망 6명·부상 10명, 2012년 사망 11명·부상67명, 2013년 사망 11명·부상 71명). 피해가 주변으로 확산되기 쉬운 화학물질 사고는 초기 대응이 특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고 위험이 높은 화학물질을 일정량 이상 취급하는 업체들은 법률에 따라 자체방제 계획서나 공정안전 보고서 같은 비상조처 계획을 작성해 놓고 있다. 정부도 대응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구미 불산누출 사고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런 매뉴얼은 사고 때는 무용지물이다. 현재순 화학섬유노조 노동안전실장은 “매뉴얼에 따라 훈련을 거듭해 숙달이 돼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사고 대응 주무 부처도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2012년 구미 사고 때 매뉴얼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언론과 국회의 질타를 받은 뒤 매뉴얼을 수정했다. 하지만 본부 주관의 실제 적용 훈련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화학물질 누출 사고 위험은 화학산업단지 인근에만 있지 않다. 한국에서 화학 사고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 화학물질을 제조하지는 않더라도 생산 공정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업체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고대비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만 전국에 1만개가 넘는다. 이런 사업장들은 대규모 산단뿐 아니라 시골의 농공단지에도 있고, 도시의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 근처에도 존재한다. 사고대비물질 저장탱크 인근에 거주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부도 알지 못한다. ‘사고대비물질’ 취급 사업장 가운데 환경부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관리하는 사업장은 100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환경부는 불화수소의 경우 보관·저장량이 1000㎏ 미만이면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노동자 5명이 숨지고 인근 주민을 불안에 떨게 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사고에서 누출된 불산은 60ℓ였다. 사고대비물질 취급량만을 안전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저장소와 주거지역의 거리도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화학사고의 근본 원인은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 문제를 비용으로만 접근하는 사업주들과 그들을 용인하는 사회 구조라는 게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은 “산업체 사고 현장에선 산재 처리를 하지 않으려고 119를 부르지 않고 환자를 트럭에 싣고 병원으로 가다가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전체 사회 시스템이 기업화되고 국가 기능마저 기업화되는 것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세월호도 화학사고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울산·광주·대전/ 김정수·신동명·안관옥·전진식 기자 jsk21@hani.co.kr
불화수소
상온에서 무색투명하며 자극적 냄새가 나는 기체로, 물에 용해되면 ‘불산’이 된다. 유리와 금속 등을 잘 녹이는 성질이 있어 유리 표면 가공, 금속 표면 처리, 반도체 제조 공정 등에 널리 사용된다. 강력한 부식성 때문에 인체에 고농도로 흡입되면 치명적이며, 심한 피부 화상, 눈 손상 등을 일으킨다.
페놀
상온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무색의 결정으로, 물에 매우 잘 용해된다. 주택 건자재, 자동차 부품 등에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 수지, 전자부품·도료·접착제 등에 사용되는 에폭시수지나 페놀수지의 원료로 쓰인다. 흡입에 급성독성을 나타내며 피부에 화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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