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브리지 통해 도심지부터 템스강 남쪽 연결
피터스 힐 한해 방문객 500만명, 낙후지역 개발촉진
시티지역엔 고층빌딩 신축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
런던을 대표하는 건물인 세인트 폴 성당의 남쪽에서 템즈 강가까지 길이 300m, 너비 20~30m로 완만하게 뻗어있는 ‘피터스 힐’이라는 길이 있다. 이 도로는 로마 지배 때부터 세인트 폴 성당이 있는 시티(서울의 종로·명동에 해당) 지역에서 템즈 강가로 나오는 중요한 통로였지만, 20세기 들어서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는 길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 길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0년 강 건너편에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문을 열었고, 2002년 이 길과 테이트 모던을 연결하는 길이 370m의 보행자 전용 밀레니엄 브리지가 재개통되면서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길 가운데 하나가 됐다. 런던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어느 쪽에서 접근하든 세인트 폴 성당~피터스 힐~밀레니엄 브리지~테이트 모던으로 연결되는 이 길을 걷게 된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를 찾아오는 시민·관광객들이 2007년 500만명을 넘었으므로, 아마도 이 길과 밀레니엄 브리지를 걷는 시민의 숫자는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런던 정경대 도시대학의 김정후 박사는 “피터스 힐은 하나의 작은 길이지만, 영국 런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성공을 상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밀레니엄 브리지와 테이트 모던 갤러리, 런던 아이(밀레니엄 휠), 밀레니엄 돔, 밀레니엄 빌리지 등으로 이뤄진 대규모 건축 사업이다. 그 가운데 밀레니엄 브리지와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런던대 바틀렛 스쿨(도시대학)의 피터 홀 교수는 “밀레니엄 브리지를 통한 세인트 폴 성당과 테이트 모던의 연결은 매력적이고 건축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다른 지역의 도시 재생과 비교할 때 매우 성공적인 사례였다”고 말했다.
밀레니엄 브리지와 테이트 모던의 성공은 단지 미술이나 건축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영국도시재생협회(BURA)의 개러스 포츠 연구정책국장은 “밀레니엄 브리지는 많은 사람들을 테이트 모던으로 끌어들여 엘리펀트 앤드 카슬 등 템즈강 남쪽 서더크 지역의 개발을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 다르게 런던은 역사가 오랜 강북의 시티와 웨스트민스터 지역이 여전히 모든 면에서 중심이고, 템즈강 남쪽은 대부분 낙후돼 있다.
밀레니엄 브리지뿐 아니라, 밀레니엄 프로젝트 전체가 템즈강의 남쪽의 개발을 통한 템즈강 남북의 통합과 관계가 깊다. 테이트 모던과 런던 아이, 밀레니엄 돔, 밀레니엄 빌리지 등은 모두 템즈 강 남쪽에 지어졌으며,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런던 시청도 마찬가지였다. 김정후 박사는 “템즈강 남북의 대통합은 런던의 미래를 위한 열쇠였는데, 새천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밀레니엄 사업을 벌여 템즈강 남쪽의 재생 사업의 동력으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런던 아이의 경우, 마치 파리의 에펠탑이 그랬던 것처럼, 규모가 너무 크고 주변 지역과 어울리지 않는 흉물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계획까지 세워졌다. 그러나 이제는 런던 템즈 강가의 대표적인 풍경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런던은 역사적 도심인 시티 지역에서의 헤론 타워(183m), 레든홀 빌딩(222m) 등 고층 빌딩 신축을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여왔다. 시티의 역사적인 풍경과 세계 금융 중심지로서의 활력을 함께 지키기 위해 최고 품질의 새 건물만을 허가해온 전통에 따른 것이다. 이미 시티 지역엔 로이즈 빌딩(리처드 로저스 설계), 스위스 재보험(일명 거킨·노먼 포스터 설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다.
런던 정경대 도시계획학과의 로버트 타버너 교수는 “런던의 장점은 융통성이며, 역사적 도시이면서도 세계의 경제 수도들과 경쟁하고 있다”며 “시간이 멈춰버린 로마와 파리와 달리 런던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글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