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자 미국은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던 12만여명의 일본계 미국인을 네바다주 사막 등으로 강제 수용했다. 이들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미국에서 출생한 합법적 미국 시민이었으나, 전쟁중이라 적국인 일본의 스파이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상황논리가 판쳤다. 일본계 미국인인 프레드 코레마츠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캐디 일감” 마련과 “소비 진작”을 위해 “이제 좀 골프를 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회의 전 몇몇 국무위원으로부터 대표로 말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지만, 박 대통령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고 보도됐...
1931년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자 심복 마이어 랜스키는 조직 자금을 스위스 비밀계좌로 옮겼다. 37년엔 쿠바로 진출해 카지노와 도박, 경마사업에다 마약장사까지 하면서 자금세탁을 했다. 유명한 영화 <대부2>에서 알 파치노가 열연한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와 맞서는 은발의...
2차대전 종전 직후 에이(A)급 전범으로 체포돼 스가모 형무소에 갇혀 있던 기시 노부스케는 1945년 9월11일 옥중에서 쓴 편지에 “미-소 관계가 악화하기만 하면 처형당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고 적었다. 소련과 갈등하던 미국은 동서 냉전의 방패막이가 필요해지자 46년 10월 국가안보회의에서 ‘대일정책 권고 13-2’...
카를 마르크스는 일찍이 ‘공산당선언’(1848)에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과잉생산에 의해 공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다 결국 스스로 무너질 것으로 봤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계급을 착취함으로써 존립하는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빈곤과 함께 장기적으로 자본가의 이윤율...
역대 검찰총장들의 운명은 정권과의 관계에서 갈렸다. 2대 김익진 검찰총장은 정권과 가장 격렬하게 맞선 사례로 꼽힌다. 일제 때 판사와 변호사를 지내다 해방 뒤 대법관을 거쳐 검찰총장에 오른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압력을 철저히 뿌리쳤다. 대통령 재가 아래 사설 수사기관을 만들고 고문으로 공산당 사건을 조작...
검찰의 양대 산맥은 특수부와 공안부다. 독재 정권 시절 공안부는 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도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공안검사 역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잘나갔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후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12·12 군사반란자들을 기소유예한 공안검사들은 5·18 특별법과 특...
이스라엘 부총리실엔 과학자·전문가 150명이 모인 시에스오(CSO·수석과학관실)가 있다. 정치·군사를 제외한 모든 사회·경제분야 주요 정책들을 책임지고 기획·실행해 나가는 핵심 두뇌집단이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0년대 초 러시아와 동유럽의 유대인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대거 몰려오자 시에스오는 이들을 활용해 벤...
여야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제정과 안기부법 개정에 합의한 1993년 12월7일 조만후 안기부장 특보가 국회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민자당 지도부를 붙들고 안기부 기능을 무력화시킬 법이라며 강력히 항의했으나 예산안 처리를 볼모로 한 민주당의 버티기 작전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법은 ‘정보정치’에 족...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뒤인 1997년 12월20일 낮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난 김대중 당선자는 내란 등 혐의로 수감중이던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다. 이틀 뒤 두 사람은 전격 석방됐다. 이 자리에서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김 대통령은 김 당선자 쪽에 당시 한보비리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차...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1882년 노령연금 등 복지정책을 만들면서 “이로써 50년 내에 혹은 10년 내에 닥칠지도 모르는 혁명을 예방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애초 사회주의 방어용으로 시작된 ‘복지정책’에서 한발 나아가 본격적인 ‘복지국가’가 등장하기까지는 50여년이 더 걸렸다. 영국에서 대공황에 이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