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과 기획재정부가 추진 중인 ‘알프스하동 프로젝트’는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로 알려진 형제봉 일대에 산악열차, 관광호텔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진은 산악열차반대위가 형제봉에서 진행한 ‘지리산아 미안해’ 1차 행동. 반달곰친구들 제공
“곰이 있어요! 곰이 살아요! 지리산 형제봉 반달가슴곰. 아빠 곰이 외쳐요. 엄마 곰도 외쳐요. 우리가족 살게 해다오. 여긴 우리의 삶터야. 산악열차 절대 안돼!”
동요 ‘곰 세 마리’를 개사한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투쟁가다.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8일째 농성 중인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이하 산악열차반대위)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투쟁가를 불렀다. 그 곁에는 커다란 울타리에 사람 몸집만 한 반달가슴곰이 갇혀 있었다.
인간들의 관광사업에 삶터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반달곰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국립공원과 지리산 보전 운동을 해온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이사는 현재 산악열차반대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1월10일 정부세종청사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국회 앞 농성까지 보름 넘게 길 위에서 이 사안을 알리고 있는 윤 이사를 26일 만났다.
-정식 사업명이 ‘알프스하동 프로젝트’다.
“하동군이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의 산악열차처럼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 산악열차와 모노레일, 관광호텔 등을 짓겠다면서 내건 이름이다. 화개~악양~청암면 해발 1000m의 궤도열차 15㎞와 모노레일 5.8㎞, 케이블카 등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다. 하동군은 2020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 2024년까지 1650억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26일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윤주옥 산악열차반대위 공동대표를 만났다. 반달곰친구들 제공
-형제봉 일대는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로 알려졌는데.
“그렇다. 국립공원공단의 자료를 보면, 형제봉 일대에서 추적된 반달가슴곰은 2017년 5마리, 2018년 4마리, 2019년 5마리, 2020년에는 8월 기준 4마리라고 되어 있다. 위치가 추적되지 않는 곰들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동군이 지난 6월 1차 회의 때 제출한 자료에는 형제봉이 주활동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모니터링 결과 3회 출현 흔적만 발견됐다고 되어 있다.”
반달가슴곰은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에 속한다. 환경부는 2000년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의 서식을 확인한 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종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이때 지리산 첫 방사를 시작으로 개체 수는 최근 60여 마리까지 늘어나, 지리산 뿐 아니라
경북 김천, 강원 인제,
비무장지대 등에서 생존이 확인됐다.
2004년이후 올해까지 형제봉 일대에서 위치가 확인된 반달가슴곰 분포도. 붉은 점이 반달곰의 위치다. 붉은 선은 산악열차, 파란 선은 케이블카, 초록 선이 모노레일 설치 예정 경로. 반달곰친구들 제공
-정부가 수백억 들여 되살린 반달곰이 내쫓길 위기인데, 기획재정부는 이 사업에 힘을 싣고 있지 않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가 지난해 ‘규제특례를 통한 산림휴양관광 시범사례’로 선정됐다. 그러더니 지난 6월 사업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중재하겠다며
‘한걸음 모델’에 선정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반달곰 서식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으나, 기재부는 ‘반달곰 문제도 수용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든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지역주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이미 찬반이 갈려 주민간 갈등이 시작됐다. 누가 찬성이고 반대인지 알 수 없으니 ‘산악열차’라는 단어는 금기시 되어버렸다. 신사업이 계획된다고 하면 일단 사람들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업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오직 단 한 사람, 개발업자 뿐이다. 산악열차, 케이블카 모두 ‘빠른 관광’을 유도한다. 열차를 탄 관광객은 두어시간 머물다 떠난다. 인근에서 숙박하거나 마을에서 돈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주민들은 반달곰과 같이 본인의 삶터에서 쫓겨나고 자본가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지리산산악열차반대위는 11월10일 정부세종청사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국회 앞 농성까지 보름 넘게 길 위에서 이 사안을 알리고 있다.
산악열차반대위는
알프스하동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도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운영되고 있는 20여개 산악케이블카 사업이 남산,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자이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이들은 이미 하동군이 대규모 민자사업을 여러 차례 추진하다 빚더미에 앉은 점 또한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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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때부터 곰은 이곳에서 살 수 없다. 소음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올 것이고 곰은 자연히 다른 곳으로 밀려나갈 게 뻔하다. 이 지역은 환경부의 종 복원 방사 이전부터 야생곰의 흔적이 발견되던 곳이다. 1997년 반달곰친구들의 자료를 보면 당시 원강재에서 바로 며칠 전 곰이 다녀간 흔적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곰들이 좋아하는 땅이란 뜻이다.”
-곰이 이주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을텐데.
“곰들이 여기를 떠나면 어디로 가게 될까. 지리산 더 깊은 곳이나 다른 적합지로 모일 것이다. 지리산은 포화상태가 될 것이다. 밀려난 곰들이 덕유산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인가로 내려오는 일이다. 강한 개체에 밀려 배 고프고 갈 곳 없는 곰이 어딜 가겠는가. 서식지를 빼앗음으로 해서 곰과 인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일이 될 것이다.”
2004년 환경부의 지리산 첫 방사 이후 반달곰 개체수는 최근 60여 마리까지 늘어나, 지리산 뿐 아니라 경북 김천, 강원 인제, 비무장지대 등에서도 생존이 확인됐다. 사진은 지리산에서 수도산, 금오산에서 이동했던 반달곰 KM-53. 환경부 제공
윤주옥 이사는 무엇보다 이 사업이 지난 20년간 간신히 만들어온 ‘공존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이사는 “반달곰 서식지 이야기를 꺼내면 벌써 일부는 ‘곰 때문에 안돼? 그럼 곰 다 잡아’라고 말한다. 공존 두 글자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데 한순간 20년 전으로 후퇴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을 ‘산에서 벌어지는 4대강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자연생태, 주민, 동물 모두의 공존을 위협하는 시설이 될 거예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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