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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눈으로 맛본 역사·예술…사람들과 나눠요”

등록 2006-03-26 19:52수정 2006-03-26 20:00

직업인에게 듣는 나의 전공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김울림씨

주 5일 근무 시대를 맞아 뜨고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학예사다. 주말에 자녀의 체험학습을 위해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가정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학예사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이나 유물을 수집·관리하는 일을 하는 전문 직업인이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학예사는 소몰리에(와인 감정사)같은 직업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맛을 보는 직업이지요. 소몰리에는 혀로 맛을 보지만, 학예사는 눈으로 맛을 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교육홍보팀 학예사인 김울림(39)씨는 “작품이나 유물을 매개로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직업이 바로 학예사”라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과 유물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시에 관람객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관람객에게 좀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예사들이 작품이나 유물을 보는 눈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예사가 미적 감각을 갖고 있어야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물이 관람객을 맞이할 때까지 학예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 가장 중요한 일이 전시 기획이다. 김씨는 “전시의 성공 여부는 기획 단계에서 절반 가량 결정된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어떤 전시를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전시의 주된 타깃을 어떻게 잡을지도 결정해야 한다.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시의성도 중요하다. 김씨는 남북 관계가 해빙기에 들어섰을 때 ‘금강산전’을 개최해 성공했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같은 유물이라도 어떤 시기에 어떤 테마로 전시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전시 기획은 기업체의 상품개발 과정과 비슷하다. 관람객들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기업체의 시장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시의 방향이 결정됐으면, 전시의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전시물이 뭐고,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관람객 수요와 전시물 목록을 조사해서 기획안을 만든다. 기획안이 통과돼 전시가 확정되면 전시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자신이 속한 박물관에 없는 것이라면 섭외해서 빌려와야 한다. 전시물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통해 전시 시나리오를 짜고 연구 결과를 담은 ‘도록’을 펴낸다.

확보된 전시물을 주제에 맞게 진열하는 것도 학예사의 몫이다. 진열을 잘못하면 자칫 따분한 전시가 될 수도 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관람객들의 동선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전시물을 배치한다. 빛의 방향과 밝기 등 조명과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김씨는 “학예사들은 평소 백화점 진열대를 눈여겨 본다”고 말했다. 전시 기간에는 전시장에 배치될 도슨트(전시물 해설자)와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고 관리한다.

전시 기획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교육이다. 박물관-학교 연계 교육, 가족·어린이 대상 교육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도 학예사가 고객들에게 제공해야 할 중요한 서비스다. 김씨는 “박물관·미술관-학교 연계 교육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 것으로 보인다”며 “박물관·미술관 교육 분야의 경우 앞으로 개발될 여지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자기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좀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데 더없이 좋은 직업이 학예사라고 말한다. 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동양미술사를 공부한 그가 학예사로 박물관에 발을 디디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기획한 전시를 본 사람들이 찾아와서 즐거웠다거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할 때면 학예사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역사와 전통, 예술, 문화에 관심이 있고, 또 그것을 매개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학예사에 도전해 보세요.”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유적·유물 지식과 꼼꼼한 성격 필요

학예사 되려면

학예사는 활동 영역에 따라 박물관 학예사와 미술관 학예사로 나눌 수 있다.

박물관 학예사는 사료와 문헌, 문화재 등 유물을 수집·정리·보존하고 전시회 개최를 준비한다. 미술관 학예사는 주로 예술작품의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한다.

박물관 학예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고고학, 사학, 미술사학, 예술학, 민속학, 인류학 등을 전공하면 도움이 되고, 미술관 학예사가 되기 위해서는 동양화, 서양화, 조각, 도예 등 미술 실기를 전공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반드시 관련 학과를 나와야 학예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예사와 관련된 자격증으로는 1~3급 정학예사와 준학예사가 있다. 학예사 자격증 업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맡고 있다. 준학예사가 되기 위해서는 1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준학예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학사 학위 이상 취득자는 시험에 합격한 뒤 실무 경력을 1년 이상 쌓으면 준학예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전문학사 학위자(전문대 졸업자)는 3년 이상의 실무 경력, 학위가 없는 사람은 5년 이상의 실무 경력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꼭 준학예사 자격증이 있어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학예사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예사 자격증 시험과 학예사 채용 시험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나 학예사를 뽑을 때 자격증을 가진 사람으로 응시 자격을 제한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학예사는 주로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유적·유물과 미술에 대한 지식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과 미적 감각도 갖추고 있어야 좋은 전시를 기획할 수 있고, 전시 의도를 관람객들에게 좀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학예사로 활동하는 사람은 대략 2500여명이며, 이 가운데 여성이 4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학력별로는 대학원 졸업자가 75%로 대부분이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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