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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린 학원 대신 신나는 배움터에 가요

등록 2007-12-31 19:11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 ‘한발 먼저 딛는 아이들’ 교사들과 아이들이 공원 놀이터에서 놀다 사진 촬영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 ‘한발 먼저 딛는 아이들’ 교사들과 아이들이 공원 놀이터에서 놀다 사진 촬영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교실 밖 교실] 과천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
‘골목놀이문화’가 사라진 요즘 아이들의 삶은 틀로 찍어낸 듯 다들 거기서 거기다. 학교와 집,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오가는 생활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애만 뒤처질세라 아이를 쳇바퀴에 밀어넣는다.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곧 현실의 벽에 부닥치고 만다. 학원이라도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어 아이는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경기 과천시 부림동에 있는 협동조합형 고학년 방과후 교실 ‘한발 먼저 딛는 아이들’(한발)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요일별 계절별 프로그램 마련
놀이 통해 공동체적 품성 갖추고
아이들 적극참여로 주체성 키워

■ 주어진 길 대신 새로운 길=‘한발’은 뜻이 맞는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공동육아 경험에서 비롯됐다. 과천지역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튼튼’과 ‘열리는’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방과후를 학원에서 때우는” 삭막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1999년 ‘튼튼 방과후 교실’을 만들었다. 이어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자 2002년에 다시 ‘한발’을 만들었다. ‘튼튼 방과후 교실’은 현재 ‘두근두근’으로 이름이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두근두근’에는 1~2학년들이, ‘한발’에는 3~6학년들이 다니는데, ‘한발’ 아이들은 대부분 ‘두근두근’을 거쳐 온 아이들이다. ‘한발’은 전국에서 유일한 고학년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이기도 하다. ‘한발’ 교사인 이은정씨는 “6학년 아이들은 어린이집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함께 생활해 친형제 이상으로 친하다”며 “부모님들도 공동육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 놀면서 배우는 아이들=공동체적 품성, 삶과 하나 되는 배움, 인간·자연과 올바른 관계 맺기 등 공동육아의 정신은 ‘한발’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모두 ‘한발’에 모이면 교사들과 함께 간식을 만들어 먹은 뒤, 미술과 요가, 공동체 놀이, 검도, 나들이, 산행, 풍물 등 요일별로 정해진 활동을 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가는 긴 나들이 시간에는 미술관이나 공원 등에 다녀오거나 짧은 도보여행을 한다.

계절마다 한 차례씩 다녀오는 들살이는 아이들이 모험과 도전을 통해 몸과 마음을 키울 수 있는 기회다. 여름·겨울방학 때는 일주일 정도의 일정으로 무전여행, 도보여행, 지리산 종주, 섬 체험 등을 한다. 올겨울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양떼 목장 체험과 눈꽃 트레킹을 할 계획이다. 겨울방학 때는 들살이와 별도로 일주일 가량 전북 임실에 있는 풍물전수관에서 풍물을 배운다. 봄가을에는 2박3일 동안 산이나 강, 바닷가 등으로 짧은 들살이를 다녀온다. 4학년 윤화리양은 “학원에 다니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학교 끝난 뒤 저녁때까지 친구·언니·오빠들과 어울려 놀고,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한발’에서 아이들은 돌봄과 교육의 대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우뚝 선다. ‘한발 먼저 딛는 아이들’이라는 이름도 아이들이 회의를 통해 스스로 정했다. 긴 나들이 등 한 달의 일정은 매달 첫 주 월요일에 열리는 어린이회의에서 정한다. 들살이 계획과 준비도 아이들이 스스로 한다. 아이들은 또 어린이회의를 통해 지난달 활동을 평가하거나 건의사항을 제안하기도 한다. ‘칭찬과 봉사’라는 규칙도 아이들이 만장일치로 만들었다. ‘한발’에서 컴퓨터 게임 얘기를 하거나 친구를 놀리는 등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하면 청소나 행주 삶기 등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하도록 하고, 좋은 일을 했을 때는 칭찬 게시판에 올려 한 달에 한 번씩 칭찬왕을 뽑는다.


6학년 박서영양은 “‘한발’에서 생활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웠다”며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주체가 되어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는 힘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공부 불안감·경제적 부담은 고민거리

‘한발 먼저 딛는 아이들’ 학부모들은 경쟁을 강요하지 않는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며 더불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학부모 윤환(39)씨는 “우리 부모 세대만 해도 어릴 적에 마을에서 또래와 이웃 어른들과 더불어 자랐다”며 “‘골목문화’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옛날 마을과 같은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민이 없지는 않다. 아무리 아이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길이라지만, 다들 앞만 보고 뛰는 현실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아이를 ‘놀리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토로하는 부모들도 있다. 올해 5월부터 ‘한발’ 정규시간 이외의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원어민 영어회화 수업을 시작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공부를 더 시켜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는 아직 없다. 별도의 사교육을 받는 아이도 거의 없다. 이재익(48)씨는 “불안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한발’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학원 공부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며 “공부는 중학교 이후에 집중적으로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한발’에 아이를 보내려면 처음에 출자금 2백만원과 가입비 20만원, 기부금 50만원을 내야 한다. 출자금은 졸업 때 돌려준다. 한 달 교육비는 25만원이다. 이씨는 “‘한발’에 보내면서 사교육도 시키려면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곳 학부모들은 대부분 다른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비용 부담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부모들이 특목고 학원 등 사교육에 들이는 비용을 생각하면 턱없이 큰 부담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종규 기자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 전국 18곳

공동육아 운동을 펼쳐 온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 회원으로 가입한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은 18곳이다. 모두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출발한 방과후 교실들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전국에 60곳이 설립돼 있다. 최초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서울 마포구 우리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1999년에 설립한 도토리 방과후 교실이 ‘협동조합형 방과후’의 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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